물론 판결 결과는 예고된 것이었다. 1977년 성균관대 2학년 재학 중 유신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성종대씨를 징역형으로 옭아맸던 긴급조치 9호가 올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각각 위헌 결정이 난 마당에 무죄는 당연한 귀결이나 존댓말 판결문으로 이번 재심은 사법사(司法史)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됐다.
존댓말 판결은 짧은 분량에도 헌법의 가치가 고루 녹아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사법부가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한 피고인에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 드리고 이 사건 재심 판결이 피고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판결문에 담긴 민주주의와 정의(正義), 인간애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헌법의 정신이다.
아울려 '사법부의 일원'이라는 대목에서는 재판부의 고뇌와 지혜가 엿보인다. 진심을 담은 사과와 배려, 절제의 조화라는 점에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게오르크 옐리네크의 명구를 떠오르게 만드는 판결문이다. 용기와 법의 정신은 물론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막말 판사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논란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나온 존댓말 판결이 반갑기 그지없다. 법원이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서구권 언어와 달리 존댓말과 예삿말의 차이가 심한 한국어의 구조 탓에 이렇다 할 실행 방법을 찾지 못한 차에 나온 이번 판결문이 좋은 사례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법의 존엄성은 판결문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되새겨준 재판부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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