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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한 남자가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강도를 당했다. 그는 이웃의 안전을 위해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나 주민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감사하다는 말이나 격려의 말은커녕 왜 강도를 당한 동네가 어디인지 밝혀서 집값이 떨어지게 만드냐는 항의의 목소리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있을 법한 이 같은 사건을 겪은 미국 사회평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사람들이 안전보다 집값을 중시하고 정작 중요한 것들보다 눈앞의 비즈니스 논리에 휩쓸리게 된 현상의 원인을 '코포라티즘'(Corporatismㆍ기업지배)이라 규정한다. 통상 기업이 정부와 결탁해 사회 전반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체제를 뜻하는 코포라티즘은 이 책에선 기업 권력이 지배하는 체제로 쓰인다. 저자는 코포라티즘이 우리 내면을 지배하는 논리가 돼 버렸고, 우리가 세계를 보는 렌즈이며,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라고 설파한다. 코포라티즘의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라고 보는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에 시장에 참여하고 싶었던 왕과 상거래의 안정성을 담보하고 싶었던 부르주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탄생했다"고 말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탄생한 기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에까지 세력을 뻗어간다. 예를 들면 기업은 인간을 쉽게 다루기 위해 공동체로부터 분리시켜 '개인'으로 만들었고 '협력' 대신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고 방식을 주입했다. 저자는 기업에 대한 투쟁과 같은 과격한 노동 운동을 주장하진 않지만 '기업 지배 사회에 대한 인간의 자각과 실천'을 제안한다.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와 다양한 화폐 시스템의 실험, 거대 기업의 일률적인 통제에 대한 저항 등이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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