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 완구 업체가 만든 캐릭터가 미키 마우스, 헬로 키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글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장
최근 가까운 친척이 유럽의 맥도널드 햄버거 매장에서 예쁜 캐릭터 인형을 선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제품이라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실제로 금년 2월부터 석 달 동안, 유럽 40개국 6,000여 개 맥도날드 매장에서 어린이 메뉴인 ‘해피밀 세트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들에게는 오로라월드의 ‘유후와 친구들’ 완구를 사은품으로 줬다. 맥도날드는 1979년부터 해피밀 세트 고객에게 3개월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 완구를 제공하고 있는데, 주로 미국 월트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일본 산리오의 ‘헬로 키티’ 등의 독무대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제 우리 캐릭터가 등장했으니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디자인 벤처 기업에 걸맞게 세계 캐릭터 완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오로라월드는 어떻게 그런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일까?
임가공 업체에서 ‘히든 챔피언’으로
1980년대에만 해도 우리나라의 완구 산업은 수출이 연간 최대 13억 달러에 달하는 등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캐릭터 완구 산업은 진입장벽이 낮아 약 700개 업체들이 임가공이나 OEM 형태로 제품을 생산·수출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임가공이란 모든 원부자재와 자수, 프린트 등은 본사에서 조달하고, 공장에서는 순수 공임만 받고 생산을 대행해주는 것을 말한다. 한편 OEM은 원단의 재단에서부터 모든 제조 과정을 공장이 책임지므로 좀 더 진화된 협력 방식이라 할 수 있다.
1981년 9월, 완구 전문 임가공업체로 출범한 오로라월드는 창업 4년 만에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는 법인으로 전환했다. “인형이 아니라 꿈과 행복을 팔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창업주 노희열 회장은 브랜딩과 디자인 역량이 취약한 상황에서 위험부담이 큰 결정을 한 것이다. 미숙하더라도 독자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과 홍콩에 판매 법인을 설립한 오로라월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글로벌 기업이 됐다. 국내 본사에서 디자인한 제품을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해 영국, 홍콩, 일본, 러시아, 독일, 미국의 현지법인과 상설전시장을 통해 전 세계로 유통하고 있다. 우리 캐릭터 업계 최초로 2009년 코스닥 ‘히든 챔피언’으로 지정된 오로라월드는 사업 다변화 전략에 따라 주요 사업부문을 토이, 애니메이션, 게임, 온라인 쇼핑으로 확장하고 있다. 오로라의 2012년 매출은 1,000억 원, 이익은 약 60억 원에 달한다.
글로벌 스토리가 담긴 완구 디자인
위시윙, 머피, 캐터필러 등 오로라가 만드는 완구들은 그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독특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창업 30여년 만에 세계 2위의 완구업체로 성장한 오로라월드의 핵심 역량은 바로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될 만한 이슈를 기반으로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이다. 한 예로 2001년 9·11 테러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침통한 분위기에 빠져 있을 무렵, 수호천사 인형 ‘캐터필러’, 진정한 용기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아메리칸 히어로스’를 출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며 출시 후 6개월 만에 1,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요즘은 ‘유후와 친구들’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의 관심사인 ‘지구 환경보호’에서 착안,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개성이 있는 캐릭터로 예쁘게 디자인했다. 유후(갈라고원숭이), 패미(사막여우), 루디(흰목꼬리감기원숭이), 츄우(붉은다람쥐), 레미(알락꼬리여우원숭이) 등인데, 저마다 욕심쟁이, 변덕쟁이, 놀기 좋아하는 아이 등의 성격을 부여한 다음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KBS 2TV에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방영된 ‘유후와 친구들’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방문하면서 또 다른 멸종위기 동물들을 만나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아서 일본과 싱가포르, 대만 등의 방송 매체들과 라이선스 계약이 완료되여 곧 방영될 예정이다. 또한 ‘주니어 네이버’의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를 서비스 하는 등 온라인에서도 활발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창업자가 이끄는 디자인 경영
오로라월드가 디자인을 중시하는 회사라는 것은 한국 본사에서 일하는 임직원 중 약 40%가 디자인 개발 인력이라는 데서 나타난다. 아이비 베어, 미요니, 오로라 베이비 등 오로라 월드의 캐릭터 인형들은 하나같이 깜직한 외모와 귀여운 표정으로 디자인되고 있다. 모든 완구의 디자인을 전담하는 디자인연구소에서는 한 해에 약 5,000~6,000개의 캐릭터 완구가 개발되는데, 실제로 상품화되어 시장에 출시되는 것은 약 20 퍼센트인 1,200개 정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노희열 회장이 최고디자인책임자(Chief Design Officer: CDO)라는 점이다. 주요 신제품의 디자인 개발을 노 회장이 진두지휘한다. 국내외의 디자인 관련 트렌드 정보를 종합하여 미래 지향적인 완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노 회장의 몫이다. 단순히 수치적인 데이터의 분석이 아니라 사람, 특히 어린이들에게 꿈과 행복을 심어줄 디자인 콘셉트를 구현해내는 것은 고도의 통찰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0여 년 경력의 이금숙 디자인 실장은 “노 회장의 치밀한 관찰력과 다양한 경험, 정확한 판단력 덕분에 중요한 프로젝트의 디자인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노 회장이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 ‘공격적인 시장 개척전략’을 펼치면서 세계 유명 전시회와 박람회 50여 개를 빠짐없이 참가하여 트렌드를 읽고 바이어들과 교분을 쌓고 있는 덕분이다. 오로라월드에는 현재 4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일하고 있으며, 국내의 관련 디자인 전공 교수들을 자문위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디자이너들에게 차별화된 디자인을 개발하면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는데, 해마다 당기 순이익의 2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전문가 경영 체계 구축
오로라월드의 경영은 시대의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의 몫이다. ‘월트디즈니 코리아’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사장을 역임한 최영일 대표를 2012년 3월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캐릭터 완구, 뮤지컬,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영역을 넓혀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전략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최 대표는 YG엔터테인먼트와 라이선싱 에이전트 업무 계약 체결을 채결하는 등 혁신적인 경영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싸이(PSY), 빅뱅, 2NE1등을 앞세워 음악과 공연, 뮤직비디오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새롭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공동 개발하게 된다.
세계 최고 콘텐츠 회사를 꿈꾸는 오로라월드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교육이다. 완구든 게임이든 놀면서 공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최근에 개발한 큐비주 캐릭터도 3~5세 아동들이 육면체의 동물들을 갖고 놀면서 숫자, 모양, 색채, 원리 등을 배울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오로라월드는 2011년 영국 ‘인디펜던트 토이 상’에 이어, 2013년 ‘틸리위그상(Tillywig Top Fun Award)’을 받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정경원 교수는…
한국 디자인 진흥원장을 역임한 정경원 교수는 국내 산업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 본부장(부시장)을 지냈으며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