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7년 넘게 신장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채 오늘도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주 3회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다 보니 생업은 일찌감치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투석에 반나절이 걸리고 치료 이후에는 일상적인 활동조차 버거울 정도로 몸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생계는 아내가 맡았고 가족들은 A 씨 병원 일정에 맞춰 하루 일과를 쪼개야 한다. 투석 치료가 장기화되면서 A 씨의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치료비와 생활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투병 기간 동안 장기이식 문 앞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온 경험도 있다. 어렵게 기증자와 매칭이 됐지만 기증된 신장의 상태가 수술 직전 예상보다 좋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이식수술이 취소됐다. 수술 가능 여부는 현장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는 설명을 코디네이터와 집도의로부터 사전에 충분히 들었지만 막상 기회가 무산됐을 때의 허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국내 뇌사 장기기증자는 매년 300~400명으로 제자리걸음인 반면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은 매년 수천 명씩 늘고 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 비해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상이 매년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점점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지만 그저 기다리면서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뿐 달리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2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021년 3만 9261명, 2022년 4만 1706명, 2023년 4만 3421명, 2024년 4만 5567명, 2025년 12월 23일 기준 4만 6420명까지 불어났다. 약 4년 만에 대기자 수가 18% 늘어난 셈이다. 반면 뇌사 장기기증자는 2021년 442명, 2022년 405명, 2023년 483명, 2024년 397명으로 연간 400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
1%가량에 불과한 장기이식 대기자 대비 기증자 비중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2021년 1.1%, 2022년 0.9%, 2023년 1.1%, 2024년 0.8%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11월 기준 장기기증자가 340명에 불과해 전년 수준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증받을 장기를 얻지 못하다 보니 결국 병세가 악화돼 사망하는 사람들도 매년 2500~3000명에 달한다. 장기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2021년 2480명, 2022년 2919명, 2023년 2909명, 2024년 3096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현재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의료 현장과 제도 여건을 고려할 때 사실상 뇌사기증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대 수준에 가깝다”며 “뇌사 판정 기준과 가족 동의 절차, 의료 인프라의 한계를 감안하면 단기간에 기증자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의 대기 기간은 각 장기별로 차이가 난다. 지난해의 경우 평균 이식 대기 시간은 신장이 2911일(약 8년)로 가장 길었고, 췌장은 2466일(약 6.8년)로 두 번째였다. 반면 간은 216일, 심장은 296일, 폐는 263일로 상대적으로 짧았다. 간·심장·폐의 대기 기간이 신장·췌장에 비해 짧은 것은 이식 기회가 빨리 와서가 아니라 이들 장기에 문제가 생긴 환자의 생존 기간이 짧아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사망하기 때문이다. 손선영 대한장기이식코디네이터협회 회장은 “신장이 안 좋은 경우 혈액·복막 투석을 통해 장기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고 췌장도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 기다릴 수 있다”면서 “반면 심장과 폐는 기능이 악화할 경우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장기별로 대기시간이 차이가 나는 것은 결국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거나 합병증 가능성이 높아져 수술 성공 가능성은 떨어진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사망하거나 건강 악화로 이식 대상에서 제외되는 환자도 매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약 6년간 신장이식을 기다려 온 환자 B 씨는 최근 장기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앞두고 있었지만 수술 전 검사 과정에서 신장 종양이 의심되는 소견이 확인돼 이식이 중단됐다. 추가 정밀 검사 결과 초기 단계의 신장암으로 진단돼 치료는 가능했지만 현행 이식 기준에 따라 향후 최소 2~3년간 이식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정준 강남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대기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 건강 상태가 변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며 “이식 직전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수술을 중단해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결국 이식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장의 경우 이식 대기자는 지난해 10월 말 기준 3만 6286명으로 전체 장기 가운데 가장 많다. 약 400명 안팎인 뇌사기증자 한 명당 최대 두 개의 신장을 이식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모두 의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연간 가능한 이식수술은 약 800건 수준이다. 단순 계산하면 현재 신장이식 대기자들이 모두 수술을 받으려면 40년 안팎이 걸리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식이 이뤄지기 전에 사망, 건강 악화, 대기 중단 등으로 명단에서 이탈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한 신장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이식 대기는 단순히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수술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들고 준비하는 기간”이라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지다 보니 지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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