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각예술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30~40년간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선명하게 그려온 정현(69)과 박은선(60)이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각각 개인전을 연 것이다. 두 작가는 오랜 기간 자신의 예술언어에 깊이를 더하는 노력을 이어가면서도 그 경계를 확장하기 위한 변주와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이 쌓아올린 조각적 성취와 현재 진행형의 탐구를 함께 만나볼 기회다.
조각가 정현의 개인전 '그의 겹쳐진 순간들'은 34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모은 서베이 전시다. 작가가 1991년부터 2025년까지 작업한 조각과 드로잉 84점이 PKM갤러리 전관에 걸쳐 펼쳐진다.
정현은 흙의 물성이 살아있는 독창적인 인물 조각으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침목과 철근, 숯 등 오랜 세월을 견딘 재료들로 눈을 돌렸다. 이들 재료가 축적한 시간과 인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세계를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시작점이었던 인간을 되짚는 동시에 새로운 전환을 꾀했다.
일례로 첫 선을 보인 백색 브론즈 두상 연작의 경우 흙을 사방에서 힘껏 쳐 압착한 형상으로 내면의 강인한 에너지를 드러내는 한편 백색의 표현으로 무구한 인간을 되새기게 한다. 야외 정원의 새하얀 대형 신작도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청계천에 세워졌다가 지금은 장충당공원에 일부만 남은 수표교(水標橋) 교각을 3D 스캔으로 측정한 후 알루미늄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다리 밑, 별다른 기교도 없이 무심하게 만들어진 돌의 형태와 세월을 견뎌온 표면에서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미감"을 발견했다고 한다. 늘 아날로그 작업을 고집하던 작가가 디지털 기술에 도전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본관 전시장에는 1990년대초~2000년대 중반의 두상 조각들이 리드미컬하게 배치돼 인간 삶의 시간과 굴곡을 성찰하게 한다. 전시장 벽면을 장식한 드로잉과 2019년 고성 산불로 숯덩이가 된 나무를 수습해 다듬고 흰게 분칠한 조각도 시선을 사로잡다. 13일까지.
박은선이 3년 만에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개인전 '치유의 공간'에서는 대표작 '무한기둥'을 포함한 조각 22점과 회화 19점이 공개된다.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박은선은 돌을 깨트려 균열을 낸 후 다른 돌을 채우고 겹치는 방식의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압도하는 3.3미터 높이의 신작 '생성·진화'가 대표적이다. 색색의 돌을 교대로 쌓아 완성한 거대한 조형물 세 개가 아슬아슬 균형을 이루며 하늘로 뻗었다. 작품에는 작가의 생이 투영되기 마련이라지만 박은선의 작품은 유독 그렇다. 박은선은 "작품이 위태로워보인다는 말을 듣는데 내 삶이 낭떠러지에 선듯 불안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내 작품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시에는 돌 조각에 '소리'와 '빛'을 더한 작가의 새로운 실험도 만날 수 있다. 천정에 매달린 296개의 대리석 구(球)가 반듯한 정육면체를 이룬 2층의 신작은 구들이 스치고 부딪치며 울리는 소리가 새로운 감각을 깨운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돌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듣고 만지고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속을 파내 빛나는 LED 조명으로 채운 돌구슬로 기둥을 올린 '무한기둥-확산' 연작의 경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이며 따뜻함을 전한다. 작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유독 심했던 이탈리아에서 나를 도와주고, 나를 존재하게 해준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처음 작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작가의 회화도 대거 선보인다. 마로 짠 캔버스에 검은 먹으로 균열을 표현해 '무한기둥'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들이다. 작가는 "조각을 오래해왔지만 내 시작은 회화"라며 "세월이 지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시도해봤다"고 말했다. 내년 1월 25일까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mkim@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