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텔레그램 오픈 채팅방. 한 시간 사이로 수십 개의 불법 마약 광고들이 쏟아졌다. 일정 금액을 내면 자동으로 하루에 수십, 수백 차례에 걸쳐 마약 등 불법 광고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이른바 ‘광고 대행’이었다. 불법 광고에는 마약을 뜻하는 은어에 ‘○g ○○’이라는 구체적 가격까지 명시됐다. 마약 불법 광고 제목에는 이름을 알만한 유명 연예인을 사칭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익숙한 특정 상품의 이름은 물론 유명 브랜드마저도 무차별 도용됐다. 하단에는 불법 거래를 하는 이른바 ‘딜러’의 텔레그램 아이디가 붙었다. 게다가 마약 거래에 주로 이용되고 있는 가상화폐 환전 광고도 넘쳐났다.
올 들어 적발된 마약 사범 10명 가운데 6명이 1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젊은 층을 파고 드는 마약 범죄를 근절하고자 검·경 등 8개 기관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를 출범했으나, 마약 등 불법 광고는 물론 거래 대금으로 쓰이는 가상화폐 환전까지 전문적으로 대신해주는 ‘대행업’이 성행하고 있어, 빠른 수사 등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적발된 마약 사범은 1만9675명으로 이 가운데 61.8%(1만2155명)이 10~30대다. 10대부터 30대까지 마약사범은 지난 2018년만 해도 5257명(41.7%)에 불과했다. 이후 2022년 처음으로 1만명선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 2023년에는 1만6528명(59.8%)까지 급증했다. 특히 전체 마약 사범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늘면서 같은 기간 40%대에서 60%대까지 근접했다. 지난해 적발된 10~30대 마약사범도 1만4645명을 기록, 역대 최초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정부도 젊은 층을 빠르게 파고 들고 있는 마약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21일 검찰·경찰·관세청·해양경찰·서울특별시·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국가정보원·금융정보분석원(FIU)가 참여하는 ‘마약범죄 정부합동수사본부(합수본)을 출범했다. 마약 수사·단속 인력은 86명으로 수원지검에 설치했다. 다만 검사장급이 맡게 될 본부장은 현재 공석이다. 애초 본부장에는 박재억 전 수원지검장이 내정됐다. 하지만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이후 박 지검장이 사표를 내면서 제1본부장을 맡게 된 신준호 부산지검 1차장검사가 직무를 대행한다. 1·2부 본부를 중심으로 4개 검사실과 7개 수사팀(밀수·유통·사이버범죄 수사), 1개 수사지원팀, 2개 특별단속팀(우범시설·외국인)이 배치되는 구조다. 수사지원팀의 범죄 정보와 특별단속팀의 합동 단속을 거쳐 수사팀에서 수사에 착수하고, 검사실은 사건을 송치받아 보완수사와 사건 처리를 담당한다. 국제공조팀에 각 기관 해외 파견 인력이, 범죄예방팀에 식약처·복지부·교육부 등 치료·재활·예방 관련 정책 부서가 참여해 합수본 업무를 외부 지원한다.
공급·유통·소비에 걸친 모든 유형의 마약류 범죄에 집중 대응한다는 게 합수본의 계획이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마약 범죄가 해마다 지능·조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약 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 오픈채팅방에는 불법 마약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마약 광고가 하루에도 수백 번 게재되고 있다. 이는 온라인·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10대와 20·30대에게 무작위로 노출되고 있다. 심지어 마약상을 고를 수 있는 ‘오픈마켓’식 광고마저 등장했다. 마약 판매상의 이름을 게재하고 이를 누르면 자동으로 판매·구매자가 연결되는 구조다. 여기에 마약 거래 대금을 가상화폐로 바꿔 전달하는 ‘세탁소’도 가동되고 있다. ‘△△△ 대리 결제’라는 이름을 걸고 현금을 무통장 거래로 입금하면 가상화폐로 바꿔준다. 현금을 가상화폐로 대신 바꿔주고 이를 또 다른 가상화폐로 교체해 마약 거래에 따른 검경 등 수사기관의 자금 추적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드로퍼(전달책)’에게 보증금을 받거나 거래 규모도 도소매 단위로 세분화되는 등 마약 거래가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안지성 법무법인 안팍 대표변호사는 “드로퍼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받거나 보증금까지 내게 한다”며 “현금을 무통장 거래로 받아 가상화폐로 바꾸는 ‘세탁소’까지 등장하는 등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단속 강화에도 불구하고 마약 범죄의 수법은 오히려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대검 마약과장 출신인 박경섭 법무법인 에프앤앨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도 “현직 시절 수사 과정에서 현금을 가상화폐로 다시 현금화하는 마약 결제 대행 사건을 접하고, 관련 수사를 위해 유사 사건 판결문을 수사관들과 공유한 바 있다”면서 “수사가 쉽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가상화폐로 결제 대행을 해주는 범죄자를 신속하게 수사해야만 향후 판매상까지도 수사 범위 내에 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약 수사에 정통한 사정 기관 측 관계자는 “텔레그램 오픈채팅방 이름만 알면 청소년까지 쉽게 마약 등 광고를 접할 수 있다”며 “불법 홍보방들은 한 곳에서 마약 거래, 환전, 드로퍼 모집까지 이뤄지면서 젊은 층이 쉽게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유입되던 마약이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공급선마저 다양해지고 있다”며 “수입 와인에 마약을 녹여 몰래 가지고 들어오는 등 밀수에서 밀매까지 수법이 한층 교묘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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