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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장’ 말하는 대통령과 ‘종묘 앞 145m 빌딩’ 짓겠다는 지자체장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서울시, 경주APEC 기간 ‘종묘 앞 고층건물’ 기습 고시

문화유산 보존과 토건 개발과의 영원한 갈등과 함께

특히 문화창조산업 앞세운 이재명 정부 기조와도 충돌

문체부 반대에 서울시의 145m 건축 실현 어려울 듯

지역균형발전 시대의 서울시·중앙정부 협력은 과제로

서울 종묘의 대문인 외삼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다. 도로가 끝나는 곳의 왼쪽이 논란의 세운4구역인데 아직 빈터다. 왼쪽 멀리 보이는 건물이 높이 90m 수준으로, 훨씬 앞에 있는 세운4구역에 높이 145m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아마 끝이 외삼문의 처마에 닿을 것으로 보인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를 두고 “하늘을 가린다”고 말했다. 최수문기자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 위가 종묘고 오른쪽 빈터가 세운4구역이다. 세운4구역에 145m 고층건물이 세워지면 종묘 전경이 꽉 막히게 된다. 뉴스1


“1600년 동안이나 지하에 묻혀 있던 한성백제의 역사가 1997년에 우연히 발견됩니다 풍납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포크레인에 훼손되어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한성백제의 왕성 유적을 한 사학자가 발견한 것입니다. 이후 국가적인 차원의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 발굴 과정에서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성이며 백제의 위대한 건축기술이 반영된 유적지란 학설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백제의 역사를 통해 서울은 로마, 아테네에 버금가는 2000년 역사를 간직한 역사고도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앞에는 이처럼 ‘풍납토성’의 유래를 설명하는 지방자치단체 안내판이 있는데 위의 문장은 전체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일부 재야 인사의 돌출 생각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의견이다. “서울은 로마, 아테네에 버금가는 역사고도”라는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는 백제의 문화유산(문화재)를 간직한 송파구만이 아니라 조선 시대 한양도성이 있던 종로구와 중구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위 글에서도 나와 있는 것처럼 문화유산과 토건(토목과 건축) 개발의 상관관계다. 토건은 문화유산을 발굴하기도 하지만 그 성격상 문화유산을 없애기도 한다. 목적지 땅이 문화유산이 있으면 토건 개발이 당초 의도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풍납토성의 백제 왕성 흔적이 정확히 100년 전인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처음 재발견된 후 산발적인 발굴에도 불구하고 이후 백여년 동안 백제 왕성의 존재가 부정됐다. 고대 유적이라면 당연히 아파트 등을 지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명백한 증거가 1997년에야 발견, 발굴됐는데 아쉽게도 이때는 이 지역 모두에 건물들이 들어찬 이후였다. 재산권 침해에 불만인 지역주민 및 개발업자들과의 갈등이 현재도 진행형이다.

서울 종로구 종묘 바로 앞에 높이 145m의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서울시의 정책이 발표된 후 전국의 문화유산 인근 지역이 들썩인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 문화유산이자 유세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앞에서 대규모 토건 사업을 벌일 수 있다면 다른 곳도 당연히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풍납토성 일대도 마찬가지다. 경복궁과 창덕궁이 있는 서촌과 북촌도 물론이다.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공을 들이는 한양도성도 그렇고 지방 도시에서도 역시 해당 되는 이슈다. ‘종묘 앞 고층건물’ 논란이 단순한 일회성 사건이 아닌 이유다.

최휘영(왼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 7일 서울 종묘를 찾아 정전 월대에서 바라보이는 전경을 점검하고 있다. 최 장관이 들고 있는 종이에는 세운4구역 고층건물이 들어섰을 때 모습을 예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의 정책이 문화계에 스크래치를 입힌 것은 그 과정에서다. 서울시가 종묘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문건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시보에 고시한 것은 지난 10월 30일이다. 종묘 앞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를 당초 문화체육관광부·국가유산청과 합의된 72m에서 두 배인 145m로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이 주 내용이다. 아주 중요한 내용임에도 당시 서울시는 이를 설명할 그 흔한 보도참고자료도 내놓지 않았다. 이 시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주 APEC 정상회의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던 때다. 서울시가 이른바 ‘올빼미 공시’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도 문제다. 그는 종묘 앞 고층건물 논란이 커진 이달 5일 “시가 개발에 눈이 멀어 빌딩 높이를 높여 문화유산인 종묘를 그늘지게 한다는 일각의 오해가 있다”면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늘이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말 한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특히 이 발언을 한 장소가 서소문빌딩 재개발 착공식이어서 오히려 토건 정책에 대한 반발을 불렀다. (이에 대해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7일 종묘를 일부러 방문, 정전의 월대에서 입장문을 통해 “그늘이 안 생기면 된다고? 아니, 하늘을 가리는데 무슨 말씀인가”라고 정면 반박했다.

문화유산 때문에 재산권 침해를 본다는 일부 토지주에 대해 여러 가지 반박논리가 있다. 문화유산이 중요한 것은 한번 파괴되면 영원히 회복되지 못하고 특히 이의 장소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유산은 공동체 모두의 것이다. 반면에 토건 개발은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다. 일부 토지주는 문화유산에 따른 규제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져 개인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기대만큼 이익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것이 적당한 말이 아닐까 한다.

어느 토지에서 수익이 난다고 했을 때 그 이유는 해당 땅의 원초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주변 지역과의 관계 때문이다. 늘 변하는 변두리와 중심지의 관계에서 보듯 현재 시점에서 일부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그곳 땅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원래부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세종시가 대표적인데 상황이 달라지면 수익 여부도 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의 중점 방향에서 두번째 항목으로 ‘문화’를 언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국회사진기자단


오세훈 서울시장이 5일 ‘녹지생태도심 선도사업 서소문빌딩 재개발사업 착공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문화강국 정책과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올빼미 공시’ 같은 것을 하고 또 “그늘 안 진다” 운운하던 시기 이재명 대통령은 문화산업에 대한 중요한 언급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가진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예산의 중점 투자방향으로 ‘인공지능(AI)’에 이어 두 번째로 ‘문화’를 언급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문화산업 친화적인 정책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 시대에는 문화의 중요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 문화의 힘을 더욱 키우기 위해 K컬처 투자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K콘텐츠 펀드 출자 규모 확대, 청년 창작자 지원, 한류와 K푸드·뷰티 산업 연계 등을 제시했다.

앞서 지난 1일 끝난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이 합의한 ‘경주선언’은 문화창조산업을 APEC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명문화했다. 역대 APEC 정상회의에서 ‘문화창조산업’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가 문화에 관심을 둔다는 이야기다. 덩달아 우리의 K컬처가 세계로 더욱 뻗어나갈 중요한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와 문화산업의 기본 중에 기본이 전통과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종묘 등 문화유산을 잘 관리하고 이를 활용해 세계적인 문화상품을 만들어 판다면 한국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성장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문화강국 정책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토건 위주의 정책으로 일부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현 서울시의 기습적인 ‘종묘 앞 고층건물’ 시도가 이례적인 논란이 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최근 외국인들과 함께 우리 국민들 인기 장소이자 서울 내사산 중의 하나인 낙산은 높이가 125m인데 오세훈 시장이 허용한다는 종묘 앞 고층건물은 이보다 훨씬 높다.)

풀밭으로 보이는 곳이 풍남토성 성벽이다. 원래는 높이 11m였다는데 16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낮아졌다. 왼쪽 아파트가 있는 부분이 풍납토성 성 안이다. 백제 왕성 유적 내에 아파트들이 잇따라 세워지면서 회복할 수 없는, 많은 문화유산 파괴가 일어났다. 최수문기자


다른 시각들도 보자. 혹자가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그들은 역시 문화유산인 도쿄역 주위를 초고층건물로 도배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연하다. 우리도 서울역 주위를 잘 개발하면 된다. 반면에 우리의 종묘는 일본으로 하면 일본 왕실의 조상신을 모신 이세신궁과 비슷하다. 이세신궁 주위에 고층건물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 혹자는 서울 4대문 안(한양도성 내부)도 고층건물이 즐비한 도쿄나 맨해튼처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목표가 왜 로마나 아테네, 그리고 파리처럼 되면 안된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우리 서울이 가진 문화유산은 도쿄나 맨해튼 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문화강국이든 경제강국이든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고층건물이 없어서 슬럼화된다는 서울시 주장도 문제가 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최근의 서촌이나 북촌, 남산, 낙산 등에 가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서울 시내 일부 슬럼화는 고층건물 부재 때문이 아니라 시 정책의 부재와 잘못에 있다. 세운4구역도 종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합의된 적당한 높이에서 타협이 가능하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지난 7일 “관련 법령의 개정과 제정을 포함, 모든 수단을 강구해 종묘 앞 145m 건물 건축을 막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이 이렇게 배수진까지 치고 나선 상황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생각대로 초고층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종묘 앞 해당 토지주들의 하소연대로, 사업이 또다시 장기간 표류하는 것 역시 문제다. 종묘의 제대로 된 보존이 모든 국민의 바람이라면 종묘 앞 주민들도 그 국민 중의 일부니까 말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7일 서울 종묘 정전의 월대에서 손피켓을 든 세운4구역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풍납토성의 북쪽 성벽 모습. 밖의 울타리에 정부의 규제 안내문(오른쪽)과 지역 주민들의 규제 철폐 플래카드가 함께 있다. 최수문기자


흥미로운 것은 2000년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주요 인재와 경제의 중앙 집중에 대한 반발로 ‘지역균형발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묘해진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관계다. 이를 테면 문체부가 진행하는 문화·관광 정책 대상에서 서울시를 ‘건너 뛰는’ 측면이 눈에 띈다. 이를 테면 관광에 대한 지원 육성에서 서울시나 수도권은 배제다. 문화 지원정책도 비슷한 경향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자금과 사람이 풍부한 서울이 아닌, 보다 어려운 지방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상대적으로 더 풍부한 자금으로,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가 말하기도 했다. 이는 문체부 만이 아니라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울은 서울대로 고민이 있다. 정부 기관의 지방이전은 적지 않게 서울거주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많고 적음을 떠나, 서울 시민이 현재 가진 것을 잃을 수 있다는 피해심리를 해소하는데도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결국 중앙정부와 지자체(또는 지방정부)의 정책 협조가 소홀해지면서 초래된 마찰이 아닌가 한다. 지자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과 함께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사안 별로 유기적 관계가 돼야 한다. 수도인 서울시와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이는 종묘 앞 고층건물 사태의 해결에서 더 나아가 균형성장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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