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박 5일 동안 아시아 순방을 떠나 말레이시아와 일본, 한국을 차례로 도는 가운데 미국의 이익을 위한 각종 합의를 잇따라 이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순방의 하이라이트인 30일 부산 미중정상회담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유예 조치를 유도한 뒤 그 사이 해당 자원·기술 자립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희토류는 각종 첨단 산업은 물론 F-35와 같은 전투기와 레이더 시스템, 유도 미사일, 핵 잠수함 등 고성능 무기에도 쓰이기에 중국의 수출 제한은 미국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는 관세대로 매기면서 호주, 일본, 아르헨티나 등 희토류 공급망 구축과 관련해서만 각국을 동맹·우방국으로 취급하는 과정을 내년 11월 3일(현지 시간)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 계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도 희토류 확보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언제 중국의 무역 보복을 당할지 모르는 한국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잠수함에도 쓰이는 중국 ‘희토류 반격’, 트럼프에 가장 치명적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되면서 중국은 일찌감치 희토류를 전략 무기로 꺼내들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상호 관세 부과 발표 직후인 지난 4월 4일 희토류 17종 가운데 중(重)희토류 7종에 대해 대미(對美)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중희토류는 첨단 전자·방산·전기차용 고성능 소재로 쓰이는 까닭에 범용 광물인 경(輕)희토류보다 경제적 가치가 크다. 경희토류보다 상대적으로 매장량도 적고 채굴·정제 난도도 높다.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미국 선박에 대한 입항 수수료 부과 등 다른 맞대응 조치도 많지만 희토류 수출 제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히 큰 타격을 입혔다. 충분한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 희토류가 없이는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없게 되자 미국은 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다른 수단으로 맞서며 중국에 합의를 요구했다.
팽팽히 대치하던 미중 양국은 지난 5월 10∼11일 스위스 제네바 1차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미국이 중국에 145%, 중국이 미국에 125%씩 부과하던 관세율을 115%포인트씩 낮추고 이른바 ‘관세 휴전’에 들어갔다. 이후 6월 9∼10일 영국 런던 2차 고위급 회담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 중국의 희토류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서로 완화해 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다가 경북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6년만의 정상회담을 조율하고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희토류를 두고 또 다시 충돌했다. 미국이 자국산 소프트웨어 수출 제한, 중국 선박 항만 수수료 부과 강행 등으로 상대를 압박하자 중국 상무부도 이달 9일 영구자석 재료와 채굴·제련·분리·야금 등 희토류 관련 소재·기술에 대한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인내심을 잃은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APEC 회의에서 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다음 달 1일부터 100% 대중(對中)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는 중국의 희토류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한 반격 카드였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달 대미 희토류 영구자석 수출량은 420.5톤으로 8월보다 28.7%나 줄어들었다. 이달 9일 중국이 희토류에 대한 추가 수출 통제를 발표하기 전부터 이미 영구자석 무역량이 크게 감소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란타넘족 원소와 스칸듐, 이트륨 등 희토류 원소를 합금으로 만든 영구자석은 전기자동차, 풍력발전기, 엘리베이터, 드론, 스마트폰, 에어컨 등에 쓰이는 핵심 부품이다.
중국 최대 규모 국영 희토류 기업인 중국희토그룹은 나아가 23일 자국의 수출 통제 정책을 올 4분기에 더 엄격히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희토그룹은 2021년 12월 중국알루미늄그룹, 우광희토그룹, 간저우희토그룹이 광물 관련 연구기관 두 곳을 통폐합해 공동으로 설립한 초대형 희토류 국영 기업이다. 중국희토그룹은 자국 중희토류 채굴 할당량인 2만 톤을 100% 확보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잰걸음…호주와 협약 맺고 아르헨 밀레이 전폭 지원
미중정상회담을 계기로 당장 중국 희토류 수출 제한을 유예하거나 완화할 수 있지만, 이 조치가 얼마나 갈지 불확실하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도 모를 리가 없다. 이에 따라 미국이 부산 정상회담에서 내년 중간선거인 11월 3일까지 수출 제한 유예 조치를 얻어 놓고 그 사이 최대한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려 몸부림을 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린다.
이와 관련해서는 27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국이 지난 4월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한 뒤부터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정부·민간 자금이 희토류 기업에 유입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금속 전문 투자사 ‘오리온 리소스 파트너스’가 미국과 동맹국들의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18억 달러(약 2조 6000억 원) 규모의 투자 컨소시엄을 최근 구성했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 자금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방부는 아예 지난 7월 미 희토류 업체 MP머티리얼스에 4억 달러를 투자해 최대주주가 됐다. 이로 인해 MP머티리얼스 주가는 올 들어 4배 이상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120억 달러 전후로 불어났다. 캐나다의 희토류 업체 ‘유코어 레어 메탈스’도 미국 국방부에서 1800만 달러를 지원받고 미 루이지애나주에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한 첫 상업용 희토류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이달 20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협력을 강화하자는 약속을 맺었다. 두 정상은 핵심 광물·희토류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협력안에 서명했고, 미국 수출입은행은 호주 내 7개 광물 프로젝트에 대한 22억 달러 규모의 금융 지원 의향서를 발표했다. 미국 국방부는 서호주의 갈륨 정제 시설에 투자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양국 정부가 앞으로 6개월간 총 30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 이상을 핵심 광물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해 최대 530억 달러(약 75조 원)의 자원 가치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호주의 희토류 매장량은 약 570만 톤으로 중국(약 4400만 톤), 브라질(약 2100만 톤), 인도(약 690만 톤)에 이은 세계 4위 수준이다.
미국 민간 기업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도 27일 미국 아이다호주 안티모니 광산 개발 업체 ‘퍼페투아 리소시스’의 지분 약 3%를 7500만 달러에 취득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최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도 희토류 확보 전략과 연계됐다는 분석이 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최근 아르헨티나와 200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화폐 맞교환)를 체결한 바 있다. 이달 12일 아르헨티나 매체 라나시온은 밀레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지지 배경을 두고 개인적·이념적 공감대를 넘어 사업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밀레이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우라늄·리튬은 물론 희토류 관련 사업에도 대규모로 투자할 기회를 기대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도 9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는 중국을 배제하고 희토류와 우라늄 같은 핵심 분야에서 미국 민간 기업에 문을 열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 순방서 日과 손잡고, 中제재는 유예할 듯…한국도 희토류 보복 안전지대 아냐
희토류 자립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급한 행보는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만나 5500억 달러(약 790조 원) 대미 투자를 전제로 한 무역 합의에는 “매우 공정한 합의(deal)”라며 대못을 박고 희토류 채굴·가공 공동 투자에만 방점을 찍었다. 미일 양국은 정상간 협의에 따라 앞으로 180일 이내에 광업·광물·금속 투자 장관 회의를 소집하고 희토류 관련 투자를 촉진하기로 했다. 양국 정부와 민간이 보조금, 보증, 대출, 지분 투자 등으로 희토류 채굴·가공 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영구자석, 배터리 등 파생 제품을 포함한 희토류 공급망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도 발굴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지 글라스 주일본 미국대사도 26일 일본경제연구센터와 일본국제문제연구소 공동 주최로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서 “미일 관세 협상에서 합의된 일본의 5500억 달러 대미 투자 중 일부는 희토류가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 등 첨단기술에서 희토류는 불가결한 광물”이라고 평가했다.
30일 부산 미중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 희토류 전략의 백미가 될 전망이다. 베선트 장관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중국과 제5차 고위급 회담을 마친 26일 NBC·ABC·CBS와 연쇄 인터뷰를 갖고 “나와 내 협상 맞상대(카운트파트)인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무역 합의의 틀을 마련했다”며 “(올 12월 1일부터 예정된)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시행을 1년 간 연기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또 “이에 따라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100% 관세 부과를 피하게 됐다”며 “미국 농부들을 위한 대규모 농산물 구매에 대해서도 합의했고, 펜타닐 원료 물질 문제 해결에도 합의했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희토류 자립 행보에도 실제 공급망을 구축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곳곳에서 나온다. 희토류 원료만 확보한다고 곧바로 공급망까지 구축되지는 않는 까닭이다. 정제 기술과 경험이 없기에 서방 세계가 당분간 중국 희토류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유럽연합(EU)은 이미 중국에 희토류 협력을 사정하기 시작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2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화상통화로 2시간 정도 건설적인 대화를 했다”며 “긴급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 당국자들을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초청했고 왕 부장이 이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이달 9일 희토류 추가 수출 통제를 단행하자 다급하게 손짓을 한 것이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 계열의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도 트럼프 대통령와 호주의 희토류 협력 발표 직후인 21일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희토류 공급의 핵심 쟁점은 매장량이 아닌 첨단 정제 기술”이라며 중국의 지배력은 당분간 여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미국이 앞서는 AI 반도체와 양자컴퓨터, 로봇 등의 분야에서 자립을 꾀하고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기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는 상황이 이어지자 둘 사이에 낀 한국의 위치가 더 불안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29일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일본과 같은 희토류 협력안이 의제로 오를 수도 있다.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방안도 조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이 경우 최근 한화오션(042660)의 미국 자회사 5곳 제재처럼 중국의 희토류 견제가 불똥으로 튈 위험도 있다. 한국 역시 희토류의 80~90%를 중국에 의존하는 입장이다. 한국은 희토류가 아니라 2021년 중국 요소수 하나의 공급이 불안해진 것만으로도 물류 대란 사태를 겪은 바 있다. 한국이 미국이나 EU, 일본보다 다른 나라 원자재에 훨씬 취약한 경제 구조를 지닌 나라임을 감안하면 희토류 문제를 단순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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