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이라 재산 분할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적으로 조성된 돈은 사회 질서에 반하는 만큼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으며 설령 부부 공동재산 형성에 쓰였더라도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로써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 ‘세기의 이혼 소송’이 다시 법정으로 돌아가게 됐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위자료, 재산 분할 상고심에서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지원을 노 관장의 기여로 본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원심 중 재산 분할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하는 위자료 20억 원은 원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재산 분할로 1조 3000억 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라’는 2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대법원이 근거로 삼은 것은 ‘불법 원인으로 인해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할 때에는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민법 746조(불법 원인 급여)다.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SK 선대 회장에게 건넨 300억 원을 뇌물 등 불법 조성된 자금으로 보고 이를 재산 분할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께 최 선대 회장에게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은 노 전 대통령이 재직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설령 최 회장의 재산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과 노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라며 “이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해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덧붙였다. 즉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뇌물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해 생겨난 급여이자 부당이득이라 돌려달라는 주장을 할 수 없고 또 이는 상속재산을 나누는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판단의 골자로 보면서도 이에 대한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대법원은 아울러 최 회장이 제3자에게 증여하는 등 처분한 재산도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최 회장은 이혼소송 이전인 2014년부터 교육재단과 학술원, 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등에게 증여했는데 해당 처분이 공동생활이나 공동재산 유지와 관련된 것이고 2심 변론 종결 때 해당 재산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를 분할 대상으로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2심의 판단을 뒤집은 만큼 향후 서울고법에서 재산 분할 비율에 대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 회장에게 전한 300억 원 비자금이 재산 분할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는 만큼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도도 낮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진옥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1·2심이 판단이 달랐던 것은 특유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하는지 여부였다”며 “(노 관장의) 기여는 인정을 하지만 기여도가 줄어든 만큼 향후 고법에서 분할 비용이 낮춰져 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돈 성격은 불법으로 가정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 회장에게) 넘겨준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명확히 판단하지 않았다”며 “해당 자금의 형성 과정에 불법성이 있다는 부분만 문제로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윤지상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도 “최 회장의 증여 등을 현재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한 항소심과 달리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해당 부분이 분할 대상 재산에서 제외될 듯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금전 지원과 관련한 부분도 시시비비를 떠나 분할 비율에 반영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그만큼 분할 비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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