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대법원이 16일 재산분할 1조 3808억 원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위자료 20억 원 지급은 확정됐지만 소송의 핵심인 재산분할에 대해 대법원은 법리를 다시 정립하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2017년 7월 최 회장이 이혼 조정 신청을 한 지 8년 3개월 만이다. 계열사 지분 매각 리스크에 직면했던 최 회장은 한숨 돌리며 경영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원 비자금이 SK 재산 형성에 기여했는지 여부이고, 둘째는 최 회장이 보유했던 지주사 SK(옛 대한텔레콤) 지분을 부부 공동재산이 아닌 ‘특유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300억 원은 뇌물로 보이며, 불법 자금은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사회적 자금에 법적 보호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 대법원은 “최 회장이 경영 과정에서 증여하거나 이미 처분한 주식과 자금은 사실심(2심) 변론종결일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분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이혼소송을 앞두고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를 포함해 ‘어떤 시점의 어떤 재산이 분할 대상이 되는가’에 대한 첫 구체적 기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환송심에서 재산분할액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만큼 당사자 간 합의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최 회장은 일단 가까스로 전기를 마련했지만 숨 돌릴 틈이 없다. 인공지능(AI) 등 글로벌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한미 관세협상 지원 등도 눈앞에 놓인 중대한 과제다. 28~3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서밋의 의장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물론 법원의 판단이 그렇듯이 이혼의 일차적 책임은 최 회장에게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자산이 370조 원에 달하는 재계 2위 그룹 총수의 일거수일투족은 자칫 기업 전체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남은 과제는 최 회장이 분쟁을 조속히 완전히 매듭짓고 개인사를 넘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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