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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소버린 AI, 민주적 통제가 핵심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술 패권 확립에 편중돼선 안 돼

정부, 규제 정비·혁신 지원 힘쓰되

민주적 통제로 주권 위협도 막아야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류 사회의 구조를 뒤흔든 거대한 전환이었다. 이제 인공지능(AI)이 또 다른 전환의 문을 열고 있다. 전환기에는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기에 각국은 국가적 주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기술 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자국의 데이터와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기반으로 이른바 소버린 AI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정부 주도의 AI 전략을 발표했다. 기술 주권과 국가 경쟁력 확보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소버린 AI는 본래 주권과 AI를 결합한 개념이지만 민주주의에서 주권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최근 논의는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데 비해 국민적 차원은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정보·데이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거버넌스가 결여된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주권일 뿐이다. 국민 없는 주권으로 인해 결국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린 기술 국가주의로 전락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진정한 소버린 AI는 국민의 민주적 통제와 실질적 거버넌스 참여 위에서만 완성된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전환기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부정적 외부 효과를 방어하는 데까지 역할을 넓혀야 한다. AI는 개인정보 유출, 알고리즘 편향, 신뢰성 문제로 시민의 기본권을 위협할 수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생성형 AI가 혐오·차별 발언을 학습해 확산하거나 민감한 데이터를 무단 활용한 사례가 보고됐다. 또 AI가 무기화될 경우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 개인정보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방어 체계와 보호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도 충격은 가시화되고 있다. 자동화와 일자리 대체는 서비스업뿐 아니라 일부 사무직과 지식 노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불평등 심화와 노동 불안은 사회 안전망 확충, 전환기 노동자 재교육 같은 적극적 대응을 요구한다. 여기에 글로벌 빅테크의 데이터 독점은 개인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결국 국민 주권을 잠식할 수 있다. 정부는 공공 데이터 개방과 활용·보호 기준을 마련해 데이터 주권과 국민 권익을 보장해야 한다. 허위 정보와 딥페이크의 확산 역시 선거와 공론장을 왜곡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으므로 국제 협력과 공동 규범 마련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AI를 기회로 활용하려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정비하고 혁신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핀테크 산업에서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았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선제적 규제 완화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창의적 시도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억제할지가 아니라 어떤 위험을 차단하고 어떤 기회를 열어줄지 분명히 하는 일이다. 미국은 기업 자율과 시장 경쟁을 중시해 느슨한 가이드라인에 의존하는 반면 유럽연합(EU)은 AI법과 같은 강력한 법적 규제로 투명성과 인권 보호를 제도화한다. 한국은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민 주권과 민주적 통제를 함께 담보하는 균형적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정부는 AI발(發) 산업혁명을 ‘앞에서 끌고 가겠다’는 발상보다는 전환기에 필요한 사회 인프라를 구축·육성하며 시장의 혁신을 뒷받침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앞으로의 성패는 시의적절한 선택과 확고한 실행 의지에 달려 있다. 단기적으로는 인프라 투자와 인재 양성, 중기적으로는 사회 안전망 확충과 노동시장 전환 지원, 장기적으로는 국제 협력과 글로벌 규범 형성이 과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력이 국민에게 체감되는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AI 전환의 주도자가 아니라 시장과 국민의 동반자이자 안전망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은 기술 주권만이 아니라 국민 주권과 민주적 거버넌스다. 산업혁명기의 전환이 단순한 기술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구조와 시민의 삶을 바꿨듯이 소버린 AI 역시 국민의 권리와 민주적 통제를 담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그럴 때 대한민국의 AI 전략은 단순한 기술 패권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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