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고등학교 야구팀이 전국 고교야구 최대 축제인 '고시엔(甲子園)' 대회 출전을 포기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됐음에도 학교 측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며 논란이 커졌고 결국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11일(현지시간) NHK에 따르면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코료고등학교 야구부는 고시엔 2회전을 앞두고 갑작스레 출전 포기를 선언했다. 대회 도중 학교폭력 문제로 출전을 중단한 사례는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호리 마사카즈 교장은 대회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구부 내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며 "여러 관계자들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코료고 야구부는 올해 1월 일부 선배들이 후배를 폭언과 폭행(성적 폭행 포함)한 사실이 드러나 3월 일본고교야구연맹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았다. 학교 측 설명에 따르면 지난 1월 22일 1학년 부원이 야구부 생활 규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기숙사 내 컵라면 취식을 이유로 2학년 부원 4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 야구부원이 감독과 코치, 그리고 일부 부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는 추가 폭로가 SNS를 통해 퍼졌다. 학교는 새롭게 밝혀진 내용은 없다고 주장하며 피해자 보호 요청에 따라 6월부터 제3자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회 개막 전날인 이달 6일 SNS에 야구부 내 폭력 사건이 재차 확산하자 학교 측은 "1월 사건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냈다. 7일 1회전 경기에서 승리한 뒤에도 대회 참가 여부는 불투명했다. 결국 학교는 "대회 운영에 차질이 생기고 학생·교직원 안전 문제까지 고려해 2회전 출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이번 고시엔 대회장을 맡은 쓰노다 마사루 아사히신문사 사장은 "매우 유감이지만 학교의 판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폭력이나 폭언을 비롯해 부활동(부카츠)에서의 지도자와 선수 혹은 선수 간의 불합리한 상하 관계를 뿌리 뽑겠다는 자세를 다시금 가슴에 새기고 대회 운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SNS에서는 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야구부원들의 얼굴과 실명이 무차별적으로 공유되고 있어 인권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베 토시코 문부과학상은 "비방과 중상이 새로운 인권 침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자제를 당부하는 이례적 발표를 내놓았다.
한편, 일본 고교 야구 최고의 무대인 여름 고시엔은 일본 내 3441개 고교팀이 경쟁해 49개 팀만 본선에 진출하는 대회다. 지난해에는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우승해 한일 양국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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