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영화도 재탕·삼탕 틀어놓으면 외면을 당한다. 하물며 망한 작품을 몇 번이나 들이미는 것은 관객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파행을 거듭하다 폐기되는 것을 반복하는 국민의힘 혁신위원회에 대한 얘기다.
이달 10일 출범한 윤희숙 혁신위가 2주일 만에 사실상 실패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싹 다 바꾸겠다’는 과감한 혁신안을 내놓았다가 주류의 반대에 부딪히고 지도부와의 충돌 끝에 빈손으로 퇴장하는 과정이 앞서 활동했던 혁신위들의 결말과 판박이다. 지난 3년간 네 차례 등장했던 국민의힘 혁신위는 최재형에서 인요한·안철수 혁신위원장으로 간판만 바뀌었을 뿐이지 당의 티끌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이렇듯 혁신위가 매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자체 권한이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혁신위가 깨부숴야 할 쇄신 대상이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라는 점이다. 혁신안 수용 여부조차 지도부의 사전 검열을 거치는 판에서 그들을 겨냥한 인적 청산론이 먹혀들 리 만무한 셈이다.
더 참담한 것은 당이 위기를 맞을수록 기득권을 움켜쥔 구태 세력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실이다.
실제 총선 패배로 보수당의 의석수가 쪼그라들 때마다 당은 점차 늙고 영남당 색채가 짙어진다. 국민의힘의 대구·경북(TK), 부산·울산·경남(PK) 지역 당선인 비율은 20대 총선 당시 39%에 불과했지만 21대 49.6%, 22대 54.2%로 급격히 늘었다. 결국 전권 없는 혁신위의 몰락은 애초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다.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에게 몽둥이 하나 쥐어주지 않은 꼴이니 말이다.
이제 혁신의 공은 차기 당 대표로 넘어갔지만 당 안팎의 기대감은 높지 않다. 당 재건의 묘책을 논의해야 할 전당대회는 때 아닌 ‘극우화’ 논쟁으로 불붙는 분위기다. 반성 없는 분열상을 지켜보는 국민들과 당원들은 피로감을 넘어 체념 상태에 이르고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국민의힘은 존립에 대한 위기감부터 자각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