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무역 합의를 기점으로 미국과 주요국 간 무역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 무역 협상을 심각하게 진행 중”이라며 “중국과는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 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경쟁 승리 서밋’ 행사에서 “우리는 EU와 심각한 협상을 진행 중이며 그들이 미국 기업에 (시장을) 개방한다면 관세를 낮춰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EU와의 협상이 깊이 있게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시장 개방을 해야 관세를 내리겠다는 압박성 발언을 이어간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시장을 개방하는 나라에만 관세를 인하하겠다”며 “개방을 하지 않으면 훨씬 높은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썼다. 또 다른 글에서는 “주요 국가들이 시장을 미국에 개방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항상 관세 수치를 양보할 것”이라고 했다. 아직 미국과 관세 합의가 안 된 한국·EU·인도 등의 시장 개방을 촉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이날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유럽이 미국산 차량 기준을 수용하고 미국산 제품 수입을 확대하면 유리한 협상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유럽을 압박했다. 아울러 미일 관세 합의를 언급하며 “유럽·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명확히 말하면 이는 그들에게 엄청난 압력”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상대적으로 낮은 15%의 관세율을 받아 든 것이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과 EU에 큰 압박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EU의 협상이 물밑에서는 상당히 진척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EU가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무역 합의에 근접했다”며 “15%는 자동차에도 적용되지만, 50%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철강·알루미늄 등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항공기·증류주·의료기기 등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 면제에도 미국과 EU가 근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EU는 상황이 여전히 유동적이라며 ‘노딜’에 대비해 보복 조치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최고 관세율 30%, 총 930억 유로(약 150조 5000억 원) 규모의 보복관세 패키지로 24일 회원국 표결에 부쳐 상호관세 부과 시 발동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주요국에 대한 상호관세 하한선으로 15%를 제시하고 시장 개방도 요구하면서 최저관세율 15%에 시장 개방 정도에 따라 관세가 추가되는 ‘15%+α’의 새로운 기준선을 설정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15%에서 50% 사이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율을 15% 이하로 낮추지는 않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관세율 하한선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EU 측도 대미 관세협상 체결은 ‘가시권’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올로프 길 EU 집행위원회 무역 대변인은 24일(현지 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미국과 무역협상에 대해 “현재 실무급과 정치적 수준에서 매일 집중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면서 “합의 혹은 협상 결과와 관련한 결과물이 가시권(within reach)에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협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전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오는 28∼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차 고위급 무역 협상이 열린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중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더 큰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며 “논의에는 중국이 제재 대상인 러시아와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것 등 여러 안보 사안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산물 수입과 관련한 협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며 “웰스파고 임직원이 중국에 출국 금지를 당한 것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해킹 사건도 언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울러 미중간 초고율 관세 인하 조치가 8월 12일 만료돼 90일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는 뜻도 나타냈다.
한편 최근 ‘관세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미 항공사 보잉이라고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일본이 22일 무역 합의에서 보잉 항공기 100대를 구매하기로 했고 영국과 인도네시아 등도 비슷한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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