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재의요구권에 막혔던 양곡관리법이 24일 첫 단추인 국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다음 달 4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위한 수순으로, 앞서 ‘농업 4법’ 중 농어업재해대책법·보험법 개정안을 처리한 여당이 나머지 농업 2법 처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는 이날 여야 합의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양곡관리법은 초과 생산된 쌀을 국가가 의무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이원택 의원은 이날 소위 뒤 “배 재배 면적을 사전에 조정하고 당해 년도 생산 쌀에 대한 선제적 수급 조건을 강화하자는 데 여야 의견이 일치했다”며 “의무 매입 발동 조건을 대통령령에 담기로 했다”고도 설명했다. 법률이 통과되면 정부에 결정권이 있는 만큼 정부가 기준을 임의로 설정하며 의도적으로 실효성을 낮출 것이라는 농민계 우려도 나온다.
여당이 된 민주당은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이번 양곡관리법에서 양곡수급관리위원회의 권한도 강화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양곡관리법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양곡수급위원회에서 의무 매입 기준과 가격을 심의한다면 과잉생산이나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부·여당의 계산이다. 다만 양곡수급위원회의 권한 강화 조치가 곧바로 재정 투입을 줄이는 묘수가 될지는 미지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이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국가가 쌀을 의무 매입하는 것은 농업 경쟁력 강화를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 정부에서 여당이던 국민의힘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반대해왔지만 수해를 입은 농심을 달래고 소수 야당이 된 만큼 이날 법안 통과에 협조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날 소위 뒤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이 한발 물러선 것은 다행이지만 오랜 기간 무리한 주장으로 혼란과 갈등을 조장해 아쉬움을 느낀다”고 밝히는 등 신경전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이날 한국농축산연합회, 한우협회 등 농민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개최해 미국의 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 요구와 관련한 우려도 청취했다. 농해수위 소속 국민의힘 간사인 정희용 의원은 “23일 타결된 미일 무역협상에서 일본은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미국산 쌀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며 “우리도 농축산물에 대한 개방 압력이 있지 않을지, 상호 간이 협상 의제로 오르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시간에 쫓겨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무리수를 섣불리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관세 협상에서 농업인의 일방적 희생은 안 된다”며 “농민 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함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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