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이직하면서 국내 핵심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삼성전자 부장이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과거에 비해 기술 유출과 관련한 양형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형량 결정에 있어 보다 엄중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재판장 김성수)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부장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1심에서 선고된 징역 7년보다 형량이 1년 감형됐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협력업체 전직 직원 방모씨와 또 다른 김모씨는 각각 징역 2년6개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아 1심과 동일한 형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중대한 범죄로, 예방 차원에서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원심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피고인의 범행 가담 정도 등을 반영해 형을 정했고, 이는 합리적인 재량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존중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김 전 부장은 피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국가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범행을 주도했다”며 “피해 회복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씨가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뒤 해외 재취업이 어려워지자 중국 기업에 취업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유출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한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다소 낮췄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김 전 부장은 2016년 CXMT로 이직하면서 반도체 증착 관련 자료 및 7개 핵심 공정 관련 기술 자료를 유출하고, 수백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 전 부장 등이 무단 유출한 기술은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정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파악한 유출 기술자료의 개발 비용은 총 736억원에 달한다. 그는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기술인력 20여명을 빼간 것으로도 드러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해외 기술유출 8건 중 5건(62.5%)이 중국으로 향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지난해 해외 기술유출 사건 27건을 송치하고, 범죄수익 65억 원을 환수했다. 이 가운데 중국으로 유출된 사례는 20건으로 전체의 약 75%를 차지했다. 올해에도 중국으로 향한 기술 유출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 미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이 각각 1건씩을 기록했다. 기술 유형별로는 반도체가 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계 2건, 디스플레이·전기전자·기타가 각각 1건씩 집계됐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기존보다 형량이 많이 높아진 편이지만, 기술 유출은 국가에 대한 배신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형량을 보다 경각심 있게 정해, 기술을 유출하면 얻는 이익이 전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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