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된 옛 아군만큼 무서운 게 없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추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거센 압박을 가했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머스크 사업체에 정부 지원을 끊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머스크가 다시금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트럼프를 저격한 데 대한 대응이다. 전날 목소리를 높이던 머스크는 트럼프의 강수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1일(현지 시간) 트럼프는 취재진과 만나 “머스크는 전기차 의무화 조치를 잃게 돼 화가 났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적을 지녔으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머스크를 추방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면서도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머스크는 남아공 태생으로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이 과정에서 불법체류 신분으로 페이팔을 창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머스크가 불법이민자 추방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트럼프는 머스크가 이끌었던 정부효율부(DOGE)로 머스크 사업체를 감독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그는 “정부효율부가 머스크를 맡도록 해야할지도 모른다”며 “정부효율부는 머스크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괴물”이라고 말했다.
전날 머스크는 트럼프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미 상원에서 통과된 데 대해 “정신 나간 지출 법안이 통과된다면 바로 ‘아메리카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는 전기차 등 친환경 지원 정책 폐지와 대규모 감세안이 담겼다. 지난달 초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뒤 ‘공개 사과’했던 머스크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에 트럼프는 자신이 만든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머스크는 역사상 그 어떤 이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아왔고 보조금이 없다면 사업을 접고 남아공을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며 “로켓, 위성, 전기차 생산이 중단된다면 미국은 엄청난 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공격했다.
실제 머스크 주요 사업체는 정부 보조금·계약에 기대 운영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보조금 없이는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스페이스X는 미항공우주국(NASA)과 미 국방부가 주요 매출원으로 2008년부터 현재까지 200억 달러(약 27조 원) 이상 계약을 맺어왔다.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또한 농어촌 인터넷 지원금을 받는 중이다. 정부효율부가 관련 예산 삭감에 나선다면 치명타다.
트럼프는 지원금 감축 외에도 머스크를 옥죌 수단이 많다. 전기차·로보택시·위성은 물론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인공지능(AI) 스타트업 xAI·뇌신경 스타트업 뉴럴링크 등 사실상 머스크의 모든 회사가 규제 산업이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당시 아마존(AWS)과 국방부의 100억 달러 클라우드 계약에 어깃장을 놓은 전적이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공화당에 비판적인 워싱턴포스트(WP) 소유자라는 이유에서다.
트럼프가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더라도 관계 악화 자체가 머스크 사업체에 악영향을 준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테슬라 주가는 전날보다 5.34% 내려 6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돈 먹는 하마’ AI 사업의 추가 투자 유치도 골치다. xAI는 AI 연구에 월 10억 달러 이상을 투입 중이다. 이날 모건스탠리는 xAI가 50억 달러 규모 채권·대출과 50억 달러의 지분 투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자금 조달 과정에서는 시장 평균보다 더 높은 금리가 적용됐다고 한다. 블룸버그는 “xAI 재무 상태에 대한 시장 우려에다 트럼프와 갈등이 겹쳐 투자자들이 더 나은 조건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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