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지난해 2월부터 전공의 집단 사직 등을 주도해온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 겸 대한의사협회(의협) 부회장이 24일 돌연 사퇴했다. 강경파인 박 위원장이 리더십 논란 속에 물러나면서 1년 4개월 넘게 이어지던 의정 갈등이 변곡점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의료계에 따르면 박 위원장은 이날 각 수련병원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한 공지에서 “모든 직을 내려놓고자 한다. 지난 1년 반,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했으나 실망만 안겼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것이 내 불찰”이라며 “모쪼록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학생들 끝까지 잘 챙겨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2023년 제27기 대전협 회장으로 당선된 박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을 포함한 의료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대전협이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자 위원장직을 맡았다. 이후 의료 개혁 전면 백지화 등 이른바 ‘7대 요구안’을 복귀 조건으로 내걸고 투쟁의 전면에서 활동했다. 다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 140여 분간 면담한 직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자초하고 임현택 전 의협 회장 등 의사들과도 내부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새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뾰족한 대책 없이 ‘탕핑’으로 일관해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김찬규 원광대병원 사직 전공의를 포함한 30여 명은 최근 박 위원장을 향한 성명에서 “지금 대전협의 의사소통 구조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우리가 비난했던 윤석열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몇몇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박 위원장 탄핵 및 복귀 의향 등을 묻는 자체 설문을 진행하고 정치권과 접촉하는 등 균열 조짐이 뚜렷하게 감지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 위원장은 전날 “정부의 보건의료 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당장 복귀 여부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며 내부 단속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며 내부 갈등을 부추겼다. 결국 이날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병원 등 대형 병원 전공의들마저 등을 돌리자 사퇴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고려대의료원 전공의협의회 비대위는 이날 공동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의료 정상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및 의료 개혁 실행 방안 재검토 △보건의료 거버넌스 내 의사 비율 확대·제도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 등 세 가지 요구안과 함께 “무너진 의료를 다시 바로 세우고 싶고 정부와 함께 해답을 찾을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26일에는 온라인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새 비대위 구성과 향후 로드맵을 논의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총 2532명으로 의정 갈등 이전의 18.7% 수준에 불과하다. 대전협 집행부 변화는 의정 갈등 사태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비공개 만남을 가진 사직 전공의 김찬규 씨는 “그간 대전협이 온건파를 강하게 통제해 복귀 의향이 과소평가됐었다”며 “복귀를 원하는 인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박 위원장의 사퇴는) 의료계 내 단일 의견을 모으는 데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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