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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율 98%인데…"간 이식 의술 최고, 기증 절벽에 못살려" [장기기증 캠페인 이어진 숨, 피어난 삶]

<1> 기약없는 기다림, 꺼져가는 희망

국내 의료진 세계 최다·최초 경신

미국 병원 생존율 92%보다 높지만

장기기증 인식 아직은 후진국 수준

저출산·고령화로 부족 현상 더 심화

근본적 해결 위해선 제도 손질 시급





국내 의료진의 장기이식 기술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당시 명동 소재 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이 1969년 3월 신장이식 수술을 처음 성공한 지 반세기 만에 해외 어느 나라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식수술에 활용할 수 있는 장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뇌사자 이식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생체 장기이식이 더 많은 상황이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도 이식할 장기만 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세상을 등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지난해 12월 29일 9229번째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단일 의료기관 기준으로는 세계 최다 기록이다. 지난해 4월에는 수술방 네 곳을 열어 살아 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을 동시에 두 건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11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간암과 간경화를 앓았던 40대 환자와 알코올성 간경화로 생명이 위태로웠던 70대 환자가 각각의 조카로부터 간 일부를 성공적으로 이식받았다. 병원 한곳에서 동시에 복수의 간이식 수술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국내 의료진의 장기이식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서울아산병원은 1992년 8월 뇌사자 간이식을 처음 시행한 지 32년여 만에 생체 간이식 7700건, 뇌사자 간이식 1529건을 수행했다. 결과도 좋다. 간이식 환자의 생존율은 98%(1년), 90%(3년), 89%(10년)로 우리나라보다 간이식 역사가 긴 미국 피츠버그 메디컬센터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메디컬센터의 간이식 1년 생존율 평균치(92%)보다 높다.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10년간 진행성 간암 환자의 간이식 비율이 전체 간암 간이식의 40~50%에 달했다. 중증도와 재발 위험이 높아 다른 병원에서 ‘이식 불가’ 판정을 받았던 간암 환자에게 경동맥 화학색전술 등 다양한 복합 치료를 시행해 암의 크기를 줄인 뒤 간이식을 시행한 결과 5년 생존율이 65%를 넘었다. 이는 국제학술지 평균 보고치(49%)보다 15%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삼성서울병원도 2023년 세계적으로 드문 자궁이식 수술에서 첫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뇌사 장기기증자가 너무 적다 보니 환자의 가족 등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생체이식 비중이 월등히 높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발간한 ‘2024년도 장기 등 기증 및 이식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4년 국내에서 이뤄진 생존자 간 기증자는 1980명으로 뇌사 및 사후 조직 기증자 512명의 4배에 육박했다. 기증한 사람도 부모·조부모 등 직계존속(742명), 배우자(618명), 자녀·손자녀 등 직계비속(618명), 형제자매(241명) 등으로 혈연관계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간이식 9229건 중 생체 간이식이 7700건(84.4%)으로 뇌사자 간이식 1529건(16.6%)을 압도했다. 의료진은 이 같은 상황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동환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도 장기가 없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지 못하고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며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과 제도 손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 2월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을 계기로 뇌사자의 장기이식이 합법화됐다. 뇌사란 뇌간을 포함한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해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자발적인 호흡이 불가능해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면 사망한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장기를 기증하면 심장, 간, 췌장, 폐 2개, 신장(콩팥) 2개, 각막 2개 등 무려 9명의 난치병 환자에게 새 생명과 빛을 나눠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뇌사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람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로 전원된 최 모(46·남) 씨도 그중 한 명이다. B형 간염 보균자에 장기간 과음으로 간경변이 발생한 최 씨는 정맥류와 급성 신장 손상, 간신증후군, 황달, 복수 등의 증상으로 간이식이 절실했다. 5년 전 이혼해 혼자 생활하던 최 씨는 배우자의 간이식을 기대할 수 없었고 여동생은 B형 간염 보균자, 부모는 고령이라 기증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중환자실에서 뇌사자 간이식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대기했지만 간부전에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행하면서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했다.

우리나라의 장기기증 문화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후진국 수준이다. 국제 장기기증 및 이식 등록 기구(IRODaT)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 수는 9.32명으로 81개국 중 39위에 머물렀다. 인구 100만 명당 49.38명으로 뇌사 기증자가 가장 많은 스페인이나 미국(48.04명), 포르투갈(36.80명) 등 상위권에 포진한 국가는 대부분 서구권이다. 중국(4.50명), 대만(5.85명), 홍콩(3.20명), 일본(1.18명) 등 아시아권 국가는 뇌사 기증자 순위가 전반적으로 낮았다.

김덕기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이혼했거나 혼자 산 지 오래되고 가족이 고령이거나 건강이 안 좋아 이식받을 여건이 못되는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기증 장기만 있으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떠나보내는 게 의사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저출산·고령화로 젊은 층이 급감하는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기증 장기 부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뇌사 장기기증 활성화만이 이 절박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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