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인구가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신현영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가톨릭대 박병태 의과대학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 공동 연구팀은 '지역사회 통합돌봄법' 시행에 대비한 3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분석한 결과를 5일 공개했다. 2024년 3월 제정되어 2026년 시행 예정인 ‘지역사회 통합돌봄법’은 지역사회 내에서 의료와 요양을 통합적으로 제공해 '익숙한 곳에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 개념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요양병원, 요양원 등 기존의 시설 중심 돌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기반한 통합돌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중점을 뒀다.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와 가정간호센터, 가톨릭대 의과대학, 간호학과, 인문사회의학, 보건의료경영대학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은 2024년 9월부터 2025년 1월까지 5개월간 다학제 연구를 수행했다.
먼저 국회에서 통과된 7장 30항으로 구성된 통합돌봄법 분석을 통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추진 방향을 예측했다. 이후 통합지원 기본계획 수립, 정책 시행과 지원 절차, 통합돌봄 인프라 개발과 동시에 현장의 성공적 시행을 위한 통합돌봄 대상자의 건강과 복지 데이터를 관리하는 통합 디지털 시스템 개발, 의료·돌봄·복지 전문가 간 다학제 협력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구축, 통합돌봄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기관 설립 등이 추진되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의료기관의 역할과 환자중심 의료의 시각에서의 분석 및 토론을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상급종합병원이 기존 중환자 중심의 급성기 치료라는 역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계된 통합돌봄 체계의 주체 중 하나로서 참여가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도출했다.
연구팀은 초고령화시대 상급종합병원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크게 3가지 전략을 내놨다. 첫째, 전환기 돌봄(transitional care) 강화를 통해 집중치료 관리를 개선하고 재원일수를 단축해 상급종합병원의 기본 기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신경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정형외과, 혈액종양내과, 소아과, 호스피스, 가정의학과 등 각 진료과별 전환기 돌봄 모델을 개발하고, 병원 치료와 재택 병원 서비스, 재택의료 서비스 간 원활한 연계를 보장하는 프로토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상급종합병원 내 재택의료센터를 설립하고 가정의학과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의료정책에 적응할 수 있는 12차 의료와의 연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특히 파킨슨병,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치매, 수술 후 상태, 장애인, 독거노인, 말기암을 포함한 임종기 환자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한 재택의료 연계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증도에 따라 의료전달 체계별 재택의료 서비스도 차별화돼야 하는 만큼 ‘의뢰회송’ 시스템과 연계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봤다. 말기암이 아닌 다른 질환을 앓는 고령 환자들도 재택 임종이 가능하도록 사망진단서 발급 정책을 변화시키는 등 현장형 제도를 손질해 환자 중심의 의료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책연구소 설립과 통합 인력 양성을 통해 정부, 지자체 및 지역사회 조직과 협력하고 재택의료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돌봄법에 따라 제도 설계, 평가, 인력 훈련, 교육 등을 담당하는 전문기관을 만들고 정책 개발과 연구 이니셔티브, 통합돌봄 촉진과 지역계획 성과평가 지원, 질병 특성에 따른 환자군 식별과 분류, 시범사업의 종합적 평가를 통한 시행 전략 개선 등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일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입원→재활→재택의료→재입원의 순환 체계를 구축한다면 집중치료에서의 역할을 최적화하면서 치료의 연속성을 강화할 수 있다"며 "급성기에 입원한 환자들이 퇴원 전 구조화된 전환기 돌봄 계획을 받는다면 사회 복귀와 독립적 생활이 가속화되어 재원일수를 단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 원격 환자 모니터링, 재택 방문, 상담 같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재택의료에 접목하면 효율성을 제고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 기반 환자 모니터링과 장기 관리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견해다.
신 교수는 "한국의 고령화 의료 시스템이 중대한 전환점에 있으며, 선진적 의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접근과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정책 논의와 전문 역량 강화, 환자 중심 통합돌봄 프로그램 시행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차 의료기관도 재택의료와 지역 연계 시스템을 수용해 미래 의료에 대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정책입안자, 학계, 의료 지도자 간의 협력이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인 의료전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신 교수는 21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해 국회의원을 지낸 뒤 서울성모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22대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보건의료'(Healthcare) 5월 호에 실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