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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액 1조 원 목전… 피해자들의 삶은 망가졌다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2> 무너진 삶과 가족

1분기만 3000억

1인당 피해액도 2년새 두 배 ↑

대출·사채 끌어쓴 경우도 29%

40%는 가족과 관계 악화·단절

90%가 대인기피 등 고통 호소

피해자 통장, 범행 활용 늘어나

개설 비용 아끼고 추적도 피해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김 모(45) 씨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매캐한 연기 속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보이스피싱으로 2억 5000만 원을 잃은 아내가 신변을 비관해 자녀들과 동반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결국 열두 살 아들은 끝내 숨을 거뒀고, 뒤늦게 의식을 되찾은 아내는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아홉 살 딸은 뇌 손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김 씨는 현재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딸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밤낮으로 재활비와 치료비를 모으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사기 범죄가 피해자의 삶과 가족, 나아가 민생을 위협하고 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보이스피싱 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3116억 원에 육박했다. 2023년 피해액이 4472억 원, 2024년에 8545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추세라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피해액이 1조 원을 넘게 된다”고 밝혔다. 발생 건수 역시 3월까지 5878건을 기록해 연간으로는 지난해의 2만 839건을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사기 수법이 치밀해지면서 1인당 피해 금액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발생 건수당 피해 금액은 2022~2023년 2400만 원 안팎에서 2024년 4100만 원으로 수직 상승했고 올해는 5300만 원까지 치솟았다. 본지가 직접 사기 피해자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 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1억~5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답변이 36명으로 가장 많았고 5억 원 이상을 뜯긴 피해자도 2명이나 있었다. 단일 최고 피해액은 6억 3000만 원에 달했다.





◇셋 중 하나는 1억 이상 피해…93%가 한 푼도 못 돌려받아

사기 범죄가 갈수록 조직화되면서 피해 규모도 더욱 커지는 가운데 피해자 셋 중 하나는 1억 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절반가량은 배우자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돼 이혼·별거·파혼을 했거나 앞둔 것으로 나타났다. 소중한 자산을 날린 데 이어 주변인들과의 관계까지 붕괴되면서 열 중에 아홉은 우울증, 수면 장애 등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진행한 사기 피해자 심층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금액이 ‘1억 원 이상~5억 원 이하’라고 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 111명 중 32%로 가장 높았다. ‘5억 원 이상’이라고 답한 피해자도 2명(2%)으로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억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5000만 원 이상~1억 원 미만’ ‘1000만 원 이상~5000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자 비율도 각각 20%, 14%에 달했다.

‘억 소리’ 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사기범죄 특성상 범인이 검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 응답자의 89%는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기 피해를 당한 지 6개월이 넘은 응답자가 전체의 59%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검거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 스캠으로 1억 2000만 원을 날린 한 피해자는 “경찰에 1년 전에 신고했지만 미제 사건으로 수사 중지된 상태”라며 “자금책들이 외국에 있어서 못 잡는다고 하더라”고 한탄했다.

피의자 검거가 되지 않고 있는 만큼 피해액을 돌려받은 경우도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설문 응답자의 93%는 피해액을 단 한 푼도 못 돌려받았다고 답변했고 ‘일부 환수’와 ‘전액 환수’는 각각 3.5%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응답자의 70% 이상이 당한 신종 사기(투자 사기, 로맨스 스캠, 리뷰·부업 사기)의 경우 보이스피싱과 달리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계좌 정지, 피해자 보상 등이 일절 불가능하다. 코인 사기로 7400만 원을 날린 한 주부는 “변호사 상담을 받아보니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거짓말해서 범행에 쓰인 대포 통장을 지급 정지하라고 하더라. 양심에 찔려 차마 그렇게는 못했다”고 토로했다.

비극은 단순히 돈을 날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응답자의 40%가량은 이혼·별거 등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단절 및 악화를 겪고 있었다. 갈등이 심각한 이유는 피해 자금 출처에서 드러났다. 개인 자산만 쓴 경우가 49%로 가장 많았지만 가족·지인 돈까지 빌린 경우도 12%, 대출 혹은 사채를 끌어다 쓴 경우도 29%에 달했다. 비상장주식 사기로 8500만 원을 날린 40대 여성 피해자는 “아들 전역 후 자취방 전세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대출까지 3500만 원가량 껴서 투자했다가 사기당했다”며 “남편과 사이가 너무 안 좋아져서 현재 이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가 붕괴되면서 내면도 무너졌다. 사기 피해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묻자 응답자의 35%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수면 장애(26%)’ ‘대인 기피증(17%)’ ‘공황 장애(11%)’ 등까지 합하면 전체의 90%가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리딩방 사기로 전 재산 1억 5000만 원을 날린 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50대 피해자는 “즐기지 않던 술만 늘었다”며 “지옥은 사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현실에 공존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가족과 의절하고 파혼…공황장애 걸려 운전대도 못 잡아"

“사기를 당하고 난 후 형과 어머니로부터 의절 당했어요. 아버지도 예전에 꽤 큰 돈을 사기 당하셨는데 저까지 이렇게 되니 가족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리딩방 사기 피해자인 30대 남성 김 모 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족이 그렇게 투자를 말렸는데도 당시에는 눈이 돌아 말을 듣지 않았다”며 담담한 목소리로 피해 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날린 금액은 개인 자산 1억 3000만 원에 더해 가족 돈 8000만 원, 연 이자율 17%의 카드 단기 대출 3000만 원까지 총 2억 3000만 원. ‘급등주 정보를 준다’는 리딩방 일당의 꼬드김에 넘어가 사설 거래소에 거액을 넣었지만 알고 보니 숫자 하나하나 다 조작된 사기 사이트였다. 김 씨는 “사기를 당한 후 사업도 접었고 상견례까지 마친 여자친구와도 차마 결혼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며 “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기업화되는 사기 범죄 앞에 피해자들의 삶은 속절 없이 무너지고 있다. 본지는 사기 이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피해자 일곱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사기를 당하게 된 사연과 피해 금액은 제각각이었지만 한순간의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비슷하게 처참했다.

우선 피해자 일곱 명 모두 모은 재산을 대부분 날린 것은 물론 빚더미까지 떠안게 돼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밤낮으로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정 모 씨는 “버는 족족 이자로 나가니까 내 돈 같지가 않다”며 “직장에 들어가려고 해도 마음 잡기가 어려워서 단기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공모주 사기에 6000만 원가량을 날린 주부 나 모(46) 씨도 “피해금 절반은 카드론 대출로 마련했다”며 “이자가 연 12% 수준이라 체감상 8000만~9000만 원은 날린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탄했다.

건강 문제로 일을 할 수 없어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놓인 경우도 있었다. 제조 업체에서 관리자로 일하던 60대 남성 정 모 씨는 올해 초 갑자기 뇌경색이 발병하면서 퇴직하게 됐다.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병원 입원 중 부업 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급등주 광고를 보게 됐고 그 길로 퇴직금 1억 3000만 원을 몽땅 날렸다. 정 씨는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금에 보험금까지 털어 투자했지만 한 푼도 남지 않았다”며 “당장 병원비조차 없어 조만간 강제로 퇴원해야 할 처지인데 가족한테는 아직까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고도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심리적 고통으로 인한 ‘홧병’이다. 실제 일곱 명 모두 사기 피해 이후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는 수면 장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약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리딩방 사기로 3억 5000만 원을 날린 40대 여성 김 모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씨는 지난해 초 명예퇴직 후 주식 공부를 하기 위해 네이버 밴드를 뒤져보다 한 스터디그룹에 가입했다.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 20년 넘게 은행에 다녔던 만큼 사기를 당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밴드는 소리 소문 없이 폭파됐고 3억 5000만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김 씨는 “사기 피해 이후 공황장애가 너무 심해져서 교통사고만 1년간 서너 번 냈다. 가만히 있어도 누가 날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돈도 돈이지만 세상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게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알게 된 여성으로부터 7400만 원을 뜯겼다는 40대 주부 이 모 씨도 “사기를 당한 후 그 여자 계정은 온데간데없이 폭파됐다”며 “그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직 같이 나눴던 대화 내역은 남아 있어서 종종 들여다보는데 여전히 믿기 힘들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삶은 처참할 만큼 붕괴되고 있지만 사기꾼 검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검거된 보이스피싱 사기 피의자 6218명 중 조직의 대표 혹은 임원 격인 상선은 70명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2만 1833명 중 420명이 상선이었다. 반면 피해 금액 환수가 어려운 하부 조직원이 3617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흥신소·로펌까지 사칭…피해자 두 번 울리는 하이에나들

사기를 당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당혹감과 분노감을 느끼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대부분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를 노리고 투자금 회수나 가해자 처벌 등을 미끼로 고소·고발을 종용하며 재차 금원을 편취하는 2차 가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는 가해 조직을 상대로 법적·물리적 조처를 취해 투자금을 회수해주겠다고 접근하는 것이다. 탐정사무소나 피해복구센터·흥신소 심지어는 법무법인을 가장한 2차 사기 조직들은 ‘사기꾼의 통장을 가압류해 피해금을 환수해주겠다’며 피해자를 유혹한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나 단체 채팅방 등에 숨어들어 같은 피해자 행세를 한다. 이어 “지인이 피해복구센터의 도움을 받아 투자금을 전액 회수했다”고 하며 홈페이지 링크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끌어들인다. 이후 사기 조직의 통장을 가압류하는 방식으로 압박해 투자금을 받아내겠다고 하거나 코인거래소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감행해 사기꾼들의 통장에서 투자금을 빼내겠다며 수수료 선입금을 요구한 뒤 이를 가로채 잠적한다.

투자 손실을 복구해주겠다며 재차 가짜 공모주나 급등주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도 성행한다. ‘협회’나 ‘연합’ ‘구조단’ 등의 단어를 사용해 단체명을 짓거나 ‘피해 금액만큼의 수익을 얻으면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며 피해자들에게 신뢰감을 준 뒤 1차 사기와 마찬가지의 수법으로 투자금을 빼내는 방식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은 자산뿐 아니라 대출까지 받아 투자해 모두 잃은 뒤 개인회생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급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신분증 사진이나 계좌 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피해자의 절박함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사기 조직들은 피해자 명의로 거액의 대출을 발생시켜 이를 빼돌린다. 보상금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피해자들은 은행으로부터 온 대출 문자를 받고 나서야 자신이 다시 사기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이미 사기 조직은 잠적한 후다.

변호사를 사칭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100% 승률의 사기 투자금 회수 전문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며 변호사 선임비를 미리 뜯어내거나 실제 존재하는 변호사를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가상자산 사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텔레그램에서 자신을 사칭한 사기꾼에게 변호사 선임비를 갈취당한 피해자의 항의 전화를 받고 사칭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조처를 취한 바 있다.

홍 변호사는 “경찰이나 변호사 사칭은 처벌이 강하기 때문에 사칭한 사람들은 직접 피해자를 만나는 것을 꺼린다. 직접 만나서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경찰이라면 소속 경찰서에, 변호사라면 법률사무소에 전화를 하거나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등 상대방의 신분을 확실히 해야 2차 사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사기를 당한 뒤 홧김에 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 2차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경찰 신고 등 공적인 절차로 피해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투자금 환불 미끼에 사기 가담"…가해자 100명 잡으면 25명이 피해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0대 박경태(가명) 씨가 대표적이다. 사기를 당한 박 씨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사기꾼들의 제안을 덥석 물었는데 돈을 돌려받기는커녕 본인 역시 사기에 가담하게 됐다.

사연은 이렇다. 박 씨는 지난해 5월 한 마케팅 업체로부터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영화 리뷰를 작성하면 수익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속는 셈 치고 리뷰를 올렸는데 5만 원을 실제로 받았다. 그는 업체를 신뢰하게 됐고 이후 투자 제안에 거액을 보냈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다. 사기 조직은 박 씨의 투자를 미끼로 협박하며 ‘통장에 50만 원을 입금할 테니 특정 계좌 10곳에 5만 원씩 송금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돈을 보내고 나서야 이 계좌들이 또 다른 피해자의 것이었고 자신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보이스피싱 역할별 검거 인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2만 1833명 중 4분의 1에 가까운 5064명은 사기이용계좌의 명의인이었다. 올해도 3월까지 붙잡힌 6218명 중 1523명이 계좌명의인이다.

계좌명의인 중 대부분은 사기 조직에 소속된 범죄자들이 아닌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다. 사기 조직은 피해자를 포섭하는 단계에서 실제 소액을 송금하며 신뢰를 쌓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사기당한 피해자들을 겁박해 이들의 통장을 대포통장처럼 사용한다. 피해자들은 미심쩍지만 따르지 않으면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걱정에 돈을 송금하는데 송금하는 순간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최근 수사기관의 단속이 까다로워지며 대포통장 개설 단가가 높아지자 피해자의 통장을 범행에 이용하는 사기 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까지 모든 송금에 대포통장을 이용했던 사기 조직은 이제는 수천만 원 이상의 큰 금액만 대포통장으로 받고 소액 입출금은 피해자의 계좌를 사용한다. 대포통장 개설 비용을 아끼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교묘히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일반 시민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등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정상적인 업무인 것처럼 가장해 인력을 구한 뒤 그들에게 보이스피싱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인천의 한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20대 김하나(가명) 씨는 콜센터 직원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해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입비를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소액을 받은 뒤 다른 직원에게 고객을 넘긴 탓에 김 씨는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김 씨는 “회사가 정식 업체로 등록돼 있었던 데다 직원들도 많고 급여 체계나 복지제도도 마련돼 있어서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다”며 “이후 사기 조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회사 측에서 ‘퇴사를 하면 성과급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탓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 혹은 일반 시민이 가해자가 되면 금전적 피해는 물론 심리적 타격도 강하게 받는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박 씨는 “가해자를 누구보다 증오하고 원망하는 내 자신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에 한동안 괴로워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 역시 “뜻하지 않게 경찰 수사를 수개월간 받으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쳤다”며 “그동안 콜센터 직무만 담당해왔는데 지금은 그 어떤 회사도 믿기 어려워 구직도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거액의 투자금을 잃을 위기에 놓인 피해자들이 사기 조직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행각에 가담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피해를 입었더라도 가해 조직이 요구하는 송금 등의 행위는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개인 통장이 대포통장화되면 신용등급 하락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으며 범행에 일부 가담했다고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경찰 조사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더 교묘해진 보이스피싱…올 피해액 첫 1조 넘긴다[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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