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부터 기존 건강보험 적용 항암제와 비급여 항암 신약을 함께 사용할 경우 기존 약에 대해서는 건보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정작 의료현장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정부 부처간 의견조율 부족으로 세부기준도 없이 시행된 탓에 진료현장에서도 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항암제 병용요법 부분급여 급여 고시가 시행됐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암 환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고시 개정을 통해 '요양급여로 인정되고 있는 항암요법과 타 항암제를 병용하는 경우 기존 항암요법에는 기존의 본인부담을 적용하도록 한다'고 공표했다. 확정고시를 통해서는 항암요법제 중 부신호르몬제·난포 및 황체호르몬제·방사성 의약품 항암면역요법제 등과 항구토제, 암성통증 치료제 등 병용대상이 될 수 있는 치료제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고시대로라면 대부분의 항암 병용요법에 급여 혜택이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의료현장에선 고시 시행 보름이 지나도록 급여처방이 나오지 않고 있다. 원칙만 발표됐을 뿐 세부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급여적정성을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개별 치료제가 급여 적용을 받았더라도 병용요법으로 새 적응증 허가를 받으면 건별로 급여 유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고시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가 열렸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마련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들도 우려돼 선뜻 급여 처방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민원이 빗발치자 심평원은 4차 암질환심의위원회를 예정보다 앞당겨 14일에 열고 54개 병용요법 중 35건에 대해 다음달 1일 급여 적용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병용요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심평원 관계자는 “병용요법 세부사항 고시를 적용할 때 현장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대상 목록을 논의했다”며 “6월 1일 시행에 앞서 세부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병용요법에 마지막 희망을 갖고 있는 암환자들에게 절실한 문제인데 부처간 엇박자로 희망고문만 안긴 셈이다. 한 대형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달 고시된 항암제 병용요법의 부분급여 관련 세부고시가 나오지 않아 렉라자(급여)·리브리반트(비급여) 병용요법 시 두 약 모두 비급여로 처방하고 있다"며 "병용 시 생존기간이 1년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고시 개정 소식을 듣고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가 크게 낙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복지부가 급여 심사의 실무를 담당하는 심평원은 물론 건강보험공단과도 협의없이 고시를 밀어붙였다는 의혹이 나온다"며 "생색내기식 정책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소중한 말기암 환자들의 혼란만 커졌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