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 입시를 치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2007년 ‘황금돼지띠’의 해에 태어났다. ‘600년 만에 한 번 오는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는 부자가 된다’는 속설과 함께 출생아 수가 크게 반등한 해다. 길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이 아이들의 삶은 그러나 평탄하지 못했다. 정치판이 입시판을 뒤흔들면서 유례없이 혼란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일까. 이 가운데 무려 20만 명에 육박하는 이들이 다음 달 조기 대선에 유권자로 참여한다.
시간을 거슬러 2014년으로 돌아가보자. 고3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다. 당시 처음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됐다. 학종이란 대학을 가기 위해 보는 시험인 수학능력시험 평가 대신 내신, 학생회, 봉사 활동, 수상 경력 등의 기록으로 대학에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전형이 대입에서 중요해지다 보니 초등학생 시절부터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는 명목하에 ‘우리 아이 회장·반장 만들기’ 열풍이 불었다. 우리 입시 역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처럼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바뀌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일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인 2019년 ‘조국 사태’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부모의 인맥과 배경을 활용할 수 있는 이른바 ‘금수저’들에게만 유리한 전형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학종 폐지론이 불거진 것이다. 공교롭게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끈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의사 아들 영재가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전형도 바로 학종이었다. 당시 분위기와 맞물려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가 가장 공정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황금돼지띠들이 중학교 1학년이 되던 2020년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은 정시 비중을 다시 확대한다. 이어 다음 해 대선이 시작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란히 정시 확대를 공약했다. 내신과 학종 중심으로 자리 잡히던 입시 제도가 또다시 뒤집힌 시점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2023년에는 정부가 ‘사교육 수능’을 잡겠다며 킬러 문항 배제 정책을 발표했다. ‘공정한 대입 제도’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정책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응시자 약 44만 명 중 전 과목 만점을 받는 응시자가 단 1명뿐이었다. 킬러 문항 배제가 변별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교육 당국이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였다. ‘쉽게 낸다면서 더 어려운 수능’이 나오니 수험생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결국 사교육 수요는 줄어들기는커녕 팽창했고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전세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2024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정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확대하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인생의 진로를 재설계할 만큼 폭발력 있는 이슈였다. 지역인재전형으로 의대에 들어가겠다며 수도권에서 충청권 등으로 전학을 가는 ‘고교 지방 유학’까지 등장했다. 서울권 의대는 정원을 늘리지 않은 반면 지방 의대에서는 대규모 증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3학년이 된 올해 의대 정원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이해 당사자 간의 충분한 합의 없이 밀어붙인 의대 정원 확대는 결국 종합병원과 대학 강의실, 입시 현장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다. 의대 정원이 축소되면서 현재 고3 학생들은 전년도 입시 결과도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의대 합격선 변동은 자연 계열은 물론 중상위권 학과·학부에도 연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만난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황금돼지띠들의 지난 12년 학창 시절을 보면 우리 입시 제도가 얼마나 정치권에서 난도질을 당하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공약 전쟁이 본격화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입 제도와 관련해 구체적인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휘발성이 큰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현 고3 학생들의 파란만장했던 지난 12년을 되짚어보고 교육정책을 설계하기를 바란다. 20만 고3 유권자, 수백만의 학부모 유권자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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