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성희롱 사실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던 서울시 고위공무원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지만 여전히 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판결만으로는 직위를 해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시 측의 설명이다. 피해자는 3심 재판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2차 가해를 당했다며 조속한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오경미 대법관)는 이달 2일 강필영 전 종로구청장 권한대행이 인권위를 상대로 제기한 권고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강 전 대행의 상고를 ‘이유 없음’으로 기각하고 원고 패소의 2심 판결을 유지했다.
A 씨는 2020년 7월부터 1년여간 강 전 대행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했다며 2021년 10월 경찰에 고소했다. 당시 부구청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강 전 대행은 비서실에 있던 A 씨에게 “섹스 많이 해봐라” “오빠라고 불러라”라고 하거나 운동이 되는 춤을 알려주겠다며 여성의 신체가 강조되는 영상을 수차례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이 2022년 6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강 전 대행은 그 다음달 곧바로 직위해제됐다.
A 씨는 경찰 고소와 별개로 성희롱 피해에 대해 2021년 12월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다. 인권위가 2022년 9월 강 전 대행의 성희롱 사실이 인정된다며 손해배상금 1000만 원과 특별 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하자 강 전 대행은 이에 불복해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가 원고 손을 들어주면서 강 전 대행은 같은 해 7월 업무에 복귀했고 현재 서울시 아리수본부 부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올해 1월 22일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 측은 2심 선고 직후 서울시에 강 전 대행을 직위해제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시 측은 지방공무원법 제65조 3에 따라 형사사건으로 기소되거나, 성범죄·금품비위 등으로 수사기관에서 조사·수사 중일 경우에만 직위해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강 전 대행의 경우 민사에 해당하는 행정소송에서 패소했고 현재 수사기관 조사를 받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해당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종심 선고까지 났지만 서울시는 2심 판결 당시와 동일한 입장을 고수 중이다. 감사위원회 조사를 거친 후 중징계 의결이 요구된 이후에야 직위해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올 2월부터 조사를 시작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는 했으나 의결 후에도 강 전 권한대행에 1개월간 이의신청 기간을 줘야 하는 만큼 상반기 안으로 결론이 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진정인 측에서 성희롱 외에도 다른 내용의 진정을 접수한 게 있어 다같이 묶어서 조사 중”이라며 “과거 (성비위 징계) 사례들을 봤을 땐 가볍지 않은 수준의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피해자 측은 서울시가 자체 지침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며 조속한 직위해제 및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해당 매뉴얼은 ‘신고 접수 시 사실관계가 명확한 경우 행위자에 대해 즉시 직무배제 및 직무해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A 씨는 “3심이 진행되는 중에도 여전히 고위직에 머물고 있는 가해자로부터 지속적인 2차 가해에 시달렸다”며 “조만간 한국여성민우회 등과 다시 한 번 단체행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 측은 “오세훈 시장은 2021년 성희롱·성폭력 사건 가해자는 즉각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하고 성비위 사건에 무관용 원칙을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거짓말이었다"며 “가해 공무원을 즉시 직위해제하고 성비위와 2차가해까지 포함한 ‘파면’ 징계로 엄중히 처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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