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첨단기술 등을 중국 기업으로 유출한 전 SK하이닉스 직원이 구속기소됐다. 이 직원은 1만 건이 넘는 기술 사진 자료를 들고 중국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로 이직하려 했으나 내부 감사에서 적발돼 이직도 무산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중국으로의 국내 반도체 기술 유출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법원도 최근 기술 유출 사범의 형량을 높이며 엄벌 기조를 세우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안동건 부장검사)는 지난 7일 SK하이닉스 중국법인에 근무하면서 중국 화웨이의 팹리스 자회사 하이실리콘 이직을 위해 CIS(CMOS 이미지센서) 관련 첨단기술과 영업비밀을 무단 유출하고 부정 사용 및 누설한 김 모 씨를 구속기소했다. 김 씨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CIS는 빛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영상으로 만드는 소자로 SK하이닉스는 2007년 CIS사업부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단가가 낮은 중국 경쟁사 영향 등으로 출범 18년 만인 올 3월 CIS사업에서 철수했다.
김 씨는 하이실리콘의 이직 제안을 받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 SK하이닉스의 CIS 기술 자료를 무단으로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사내 보안 규정을 위반해 사내 문서 관리 시스템에서 첨단기술·영업비밀 자료를 출력하고 사진 촬영 방식으로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확보한 SK하이닉스의 기술자료 사진은 1만 1000여 장에 달한다. 일부 기술 자료는 대외비 문구나 회사 로고를 삭제하고 촬영해 유출이 금지된 자료라는 사실을 은폐하기도 했다.
특히 김 씨가 촬영한 자료 중에는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에 쓰일 수 있는 하이브리드 본딩 초기 기술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HBM 관련 1위 기업인 SK하이닉스는 최근 HBM 적층 공법에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적용할 경우 HBM에 적용되는 칩 크기를 줄이면서 전력 효율 등 성능을 2배 이상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김 씨는 SK하이닉스의 기술과 영업비밀 자료를 인용해 작성한 이력서를 하이실리콘 등 2곳의 중국 회사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직을 시도했다. 하지만 김 씨는 2022년 SK하이닉스의 내부 감사에서 적발됐고 검찰의 수사 끝에 이날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SK하이닉스에서 기술을 빼돌려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전 SK하이닉스 직원인 중국인 A 씨는 이날 열린 2심 선고에서 1심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 받았다. 수원고법 형사 2-1부는 이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5년 및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에서는 징역 1년 6월 및 벌금 2000만 원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이 유출되고 회수되지 않아 피해회사와 대한민국의 재산상 손해액수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고 했다.
2022년까지 SK하이닉스에 다니던 A 씨는 고액의 연봉을 받고 중국 화웨이로 이직했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 관련 자료를 A4 용지 4000여 장 분량으로 출력해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기소된 김 씨도 A 씨의 기술 유출이 적발된 후 벌인 사내 감사에서 범행이 드러났다.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도 중국에 유출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국가 핵심 기술 국외 유출) 등 혐의로 전 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전 씨는 삼성전자가 약 1조 6000억 원을 들여 개발한 D램 공정 국가 핵심 기술을 부정하게 취득하고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전 씨는 창신메모리테크놀러지(CXMT)로부터 계약 인센티브 3억 원과 스톡옵션 3억 원 등 6년 동안 29억 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삼성전자의 D램 공정 기술을 부정 취득하고, 사용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김 씨를 구속 기소한 사안에 대해 추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전 씨의 혐의도 발견했다. 김 씨는 검찰 추적 끝에 구속 기소돼 올 2월 19일 1심에서 징역 7년에 벌금 2억 원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삼성전자 협력 업체 전 직원 방 모 씨와 김 모 씨에게도 각각 징역 2년 6개월,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검찰에 따르면 전 씨는 김 씨와 함께 창신메모리가 세운 위장 회사인 A사로 이직했다. 이들은 A사로 회사를 옮긴 듯 꾸민 뒤 인재를 영입해 국가 핵심 기술인 18㎚(나노·10억분의 1m) D램 반도체 공정 기술을 빼돌렸다.
검찰은 현재 삼성전자 내부 자료를 유출한 공범을 국제형사경찰기구(ICAO·인터폴)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 D램 공정개발 기술 국외 유출 과정에 또 다른 전직 직원이 연루되어 있다고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와 전씨 등이 최소 세후 5억원이 넘는 금액을 제시하며 삼성전자는 물론 관계회사 기술 인력 20여명을 빼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추가 피의자 검거 등에 속도를 내면서 향후 수사 범위는 물론 기술 유출 규모도 한층 커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 유출로 삼성전자의 지난해 추정 매출 감소액만 수조 원에 달하는 등 향후 수십조 원의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은 이 기술 개발에만 1조 6000억 원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신생업체 창신메모리는 유출 자료를 이용해 D램 공정개발 자료를 만들고 중국 최고 D램 회사로 도약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