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올해 1분기 시장 예상치를 넘어서는 5.4%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연간 목표 ‘5% 안팎’ 달성에 자신감을 보여왔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세전쟁에 충분히 대비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관세 폭탄’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2분기에는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노동절 연휴 기간 소비가 살아났다고 강조했지만 기업들의 경기 전망이 1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하고 실업률은 치솟는 등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7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15일부터 지급준비율(지준율)을 0.5%포인트 인하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같은 시장 충격을 대비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읽힌다. 장기전이 될 수도 있는 미국과의 관세전쟁을 버텨낼 ‘내수 체력’을 다져놓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적절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예고했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취임 이후 중국을 향한 관세 폭탄을 날리면서 중국이 기준금리와 지준율 인하에 곧장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지만 1분기만 해도 주요 경제지표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며 시기가 미뤄졌다. 하지만 지난달 미국이 145%에 달하는 추가 관세를 발효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지난달 25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적시에 지준율과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유지해 실물경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들어 주요 지표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4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전월(50.5)보다 1.5포인트 하락한 49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6개월 만에 최대치로 하락하며 경기 위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최근 저장성·장쑤성·광둥성 등 중국의 주요 수출 지역에서는 미국발 주문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상당수 공장이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중국은 경기 침체와 고용 부진 속에 미중 무역 갈등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고용시장에 타격을 입고 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3월 도시 지역 16~24세 청년 실업률은 16.5%로 3개월 연속 16%를 넘겼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중 간 고율 관세가 장기화되고 중국 수출이 줄어들 경우 대미 수출 관련 일자리 최대 1600만 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이 서둘러 지준율 인하 등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나선 배경이다.
판궁성 인민은행장은 이날 지준율을 0.5%포인트 인하하면 시장에 장기 유동성 1조 위안(약 193조 원)이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정책금리도 0.1%포인트 인하해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가 0.1%포인트 낮아지는 효과도 기대했다. LPR은 신용대출(1년물)과 주택담보대출(5년물)의 기준이 되는 만큼 인하 폭에 따라 대출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소비 증가가 더딘 만큼 이날 당국은 내수 촉진과 노인 돌봄 등을 위한 재대출 5000억 위안(약 96조 원)을 신설하는 등 소비 확대 조치도 쏟아냈다. 인민은행은 현행 5%인 자동차 금융사와 금융 리스사의 지준율을 없애 자동차 소비를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10일 발표 예정인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2%로 전망돼 올 2월 이후 3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날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동산 활성화를 위한 대출금리 인하도 예고됐다. 매년 이자 부담이 200억 위안(약 3조9000억 원) 경감될 것이라고 판 행장은 예상했다. 아울러 5000억 위안 규모의 증권·펀드·보험사 대상 스와프 지원 기금과 3000억 위안(약 58조 원)가량의 주식 매입 및 환매 재대출 지원 기금을 더한 총지원 한도를 8000억 위안(약 155조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증권사와 펀드에 증시 방어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미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 기술 자립을 지원할 용도로 과학기술 혁신 및 기술 전환 재대출 한도를 현 5000억 위안에서 총 8000억 위안으로 대폭 증액한다. 리 국장은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이 조만간 부동산 안정화와 중소·민영기업 자금 조달 지원, 관세 영향 기업 지원, 과학·기술 혁신 보험 등 8개 분야의 정책을 추가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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