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에게 기존 의료개혁특위 대신 ‘대한민국 의료환경개선위원회(가칭)’ 창설을 제안했다. 아울러 수업 거부로 유급 위기에 몰린 의대생에게 학사 유연화 조치를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의료계 지지를 지렛대로 삼아 차기 정부에서 의료정책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대선 후보들을 향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통령 직속의 ‘대한민국 의료환경개선위원회’를 구성해달라”며 “이 위원회를 통해 속도감 있게 현재와 미래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대안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정 협의체를 만들어 의료 개혁을 논의하자는 것으로 차기 정부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성근 대변인은 의협이 제안한 위원회에 대해 “의제 설정부터 의료계가 실질적으로 주도해야 한다”며 “의료개혁특위가 만든 개혁 과제를 정리하는 게 첫 번째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해도 과거 의료 개혁 1·2차 실행 방안에서 발표한 개혁 과제를 중심으로 의료 개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앞으로도 사회적 논의 기구는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며 의료개혁특위 중심 체계를 유지해야 함을 시사한 바 있다. 게다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등 이미 실행 중인 개혁 과제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의협은 앞서 지난달 대선기획본부를 발족한 데 이어 각 정당에 정책 제안서 요약본을 보내는 등 대선 후보들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제안서에는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를 분리해 신설하자는 제안,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의료 제품에 대한 규제 완화 요구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의협은 이날 정부에 학사 유연화 조치를 통해 미복귀 의대생 유급 절차를 재검토할 것도 요구했다. 김 대변인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년 1학년이 트리플링(정원의 3배) 될 수 있다”며 “의대생들에게 타 과 학생들과 달리 특혜를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학사 유연화 조치는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또한 일부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가 의료 정상화를 위해 상반기 중 수련 특례를 열어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하반기 정기 모집 전 별도의 특례 모집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한편 의대 정원을 심의할 수급추계위에 대해 의협은 내부적으로 위원 선정을 완료했지만 정부가 의협 이외 의사 단체에 추천 공문을 보낸 게 타당한지 따진 후 추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위원 추천 마감일인 12일까지 위원을 추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의협은 복지부가 유일한 법정단체인 의협 외 다른 의사 단체에도 위원 추천 공문을 보낸 것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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