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에서 최단기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다. ‘코리아 미러클’이라는 상찬 그대로다. 이를 뒷받침한 것은 정치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리더십이었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부작용과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지만 소명 의식과 책임감으로 무장한 많은 리더들이 국익을 위해 뛰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 현실을 보자. 보수와 진보 양 진영 간에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빈자리는 자존심과 오기로 채워져 서로를 향한 투쟁만 남았다. 그 결정판은 사상 초유라는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이끄는 ‘대대대행’ 체제의 출범이다. 이재명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불복한 더불어민주당은 보복성 탄핵으로 사실상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를 낙마시켰다. 대통령·국무총리에 이어 경제사령탑인 부총리까지 모두 자리를 비우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의석수 170석으로 압도적 제1당인 민주당은 이런 사태에 일말의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 급기야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 차단을 위해 ‘대통령 당선 시 재판을 중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의 입법 조치마저 벼르고 있다. 입법권 자체가 국회를 장악한 세력의 손 안에 무기처럼 활용되면서 삼권분립이 위협받는 지경까지 왔다.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 행정부까지 장악하면 이런 막무가내식 입법과 정치가 극에 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은 최 전 경제부총리가 조기 대선을 관리할 중립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사법부에 뺨 맞고 행정부에 분풀이하는 행태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정치가 사라진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태풍으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대화와 타협이 요체인 정치 복원이 안 되면 삼류 국가로 전락할 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 3년은 정치 실종의 혹독한 암흑기였다. 정치 신인이라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상대의 목에 칼을 겨누는 정치만 일삼았다. 서로에게 1㎝의 양보도 없었다. 권력의 속성상 대결은 필요악이라지만 무도한 계엄 선포와 이를 부추긴 줄탄핵은 극단적 대결 정치의 정점이었다. ‘예스맨’과 ‘호위 무사’에만 둘러싸인 독선적 리더는 결국 정당을 사당화하게 되고, 그런 정치는 우리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남긴다는 생생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조기 대선 국면의 정치 파국 역시 이런 누적된 반목이 낳은 결과다.
문제는 이런 저질 정치가 국가 운명을 낭떠러지로 떠밀 수 있다는 데 있다. 정치에 넌덜머리가 난 경제 사령탑은 쫓기듯 떠났다. 또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극렬 정치 대립을 끊겠다는 이유로 대권 출마를 선언했다.
경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다. 가뜩이나 계엄 사태와 미국의 관세 몽니로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마당에 앞으로가 더 걱정스럽다. 정치가 초래한 사회 불안이 외국인의 투자 외면, 국가 신인도 하락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국정에 누수가 없도록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과거 정치 리더십이 우리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고, 시민사회가 정치권을 각성시켜 민주화를 이뤘다면 지금은 우리 정치가 한국을 가장 빨리 추락시키는 트리거가 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대선 심판을 통해 국민의힘과 민주당 간 적대적 대립에 기반한 공생 구조에 균열을 내야 한다. 국민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우리 경제의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올릴 수 있는 후보, 대립과 반목을 일삼기보다 상대와 타협할 줄 아는 후보, 만기친람(萬機親覽)하기보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할 줄 아는 후보, 공적·역사 의식이 있는 후보를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한다. 정치인의 수준이 국민 수준이라는 말을 유권자도 허투루 들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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