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구호를 내세우며 화석 연료 확대 방침을 강조했지만 미국 에너지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기대만큼 긍정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기간 저유가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최근 한 달 간 사라진 미국 에너지 기업의 시가총액이 총 2800억 달러(약 4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조치를 발표한 4월 2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에너지 지수는 14.3%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 500 지수가 1.8% 하락한 것보다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가 더 많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미국 최대 석유 기업으로 꼽히는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주가가 각각 11%와 18% 하락했고 슐럼버거, 할리버튼 등도 20%씩 빠졌다. 이 같은 주가 급락에 석유·가스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4월 2~28일 기준)은 총 2800억 달러 이상 증발했다. 이는 셰브론 시가총액(2300억 달러)을 넘어선 수준이다.
국제유가도 하락 추세를 보이는 중이다. 지난 30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물 종가는 배럴당 58.21달러로 2021년 3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인 관세 조치가 글로벌 경기 둔화를 초래해 원유 수요를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유가를 끌어 내리는 중이다. 여기에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결정도 유가 하락 배경으로 꼽힌다. 이에 월가를 비롯해 많은 에너지 기관들은 국제 유가가 장기간 낮은 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대형 금융기관들은 올해 WTI의 평균 가격을 배럴당 64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생산 역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미국 주요 유전에서는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며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이런 추세를 가속화 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장기간 저유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이는 까닭에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시추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많은 미국 석유 기업들은 국제 유가가 62달러를 넘어서야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다.
WSJ은 “다만 에너지 업계 일부 임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화석 연료 허가를 가속화하고 천연가스 수출을 승인하고 규제를 철폐하는 등의 조치가 향후 수십 년간 업계의 부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