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미 2+2 협의에서 미국이 환율 관련 별도의 논의를 하자고 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면이 하나 있다면 정치인이나 무역 분야가 아닌 미 재무부가 이야기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25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인근 식당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미 측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들어봐야 할 것 같다"며 이 같이 말했다. 미국 정치인, 무역 분야 담당자는 환율정책 관련 우리에 일방적인 요구를 할 수 있겠지만 금융시장을 잘 아는 재무부와 협상을 한다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란 주장으로 풀이된다. 앞서 24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한미 2+2 회의에서 한미는 기재부와 미 재무부간 환율정책 관련 별도의 논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관세가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치면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우리의 무역구조상 보복관세를 매기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그렇다면 물가보다는 경기 영향이 더 클 것이다. 통화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5월 경기예측을 바꾸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세를 올리는 미국은 자국 물가 상승 요인이지만 한국은 관세를 안 올린다면 결국 경기둔화만 예상되므로 이에 맞춰 적절한 통화정책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이 총재는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전하며 “미중 협상이 안 되면 다른 나라에 대한 상호관세 유예가 더 연기되더라도 경제적인 비용은 굉장히 크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중국이 전 세계의 공장으로서 역할을 꽤 오래 해왔기 때문에 중국을 건드리지 않고 (무역을) 돌아가게 할 물건이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고 무역을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 세계가 중국과 많이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의에서 논의된 시나리오 중에 상호관세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시나리오나 중국을 뺀 나머지 국가에 대한 관세는 90일 뒤에 없어지는 시나리오나 성장률 차이가 거의 없었다"며 "이는 다른 나라에 대한 관세가 25%이건 아니건 중국에 대한 관세가 훨씬 높아졌고 이에 중국이 보복한 효과가 다른 나라에 대한 관세 면제 효과를 상쇄시켰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여러 회의를 참석한 결과 키워드는 '불확실성'으로 요약된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IMF도 향후 전망이 어렵다보니 경제전망 시나리오를 3개로 냈고, 일본 중앙은행총재도 기본 시나리오를 어떻게 잡을지 모를 정도로 불확실성이 심해서 경제예측이 어렵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그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국채 가격 등이 크게 변동됐는데, 시장의 기능은 그래도 잘 작동해서 다행이라는 반응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의 깊이가 깊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향후 단기간에 해결이 안 되고 이 상황이 계속될 경우 시장의 회복탄력성이 잘 유지 될 수 있을까. 어려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진단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른나라 관계자들은) 다들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선진국의 재정여력이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가 오면 대응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며 "최근 몇년 미국 예외주의로 미국 자산으로의 집중도가 커졌고 비은행금융기관의 부채비율이 올라가서 조정과정이 있으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가설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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