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2014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는 사랑에 대해 질문했다고, 그리고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작가는 여덟 살이던 1979년 자신이 쓴 글귀를 창고에서 발견했다. 사랑은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아름다운 금실이지’하는 짧은 문장이다.
이들 내용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문에 포함돼 있다. 1979년이면 우리나라가 격동의 시대로 진입하기 직전이다. 작가도 이런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었겠다. 하지만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다시 변화가 왔다.
2025년 내놓은 새로운 작품에서 긴장과 내적 투쟁은 사랑과 연결로 전환된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책으로 24일 출간한 산문집 ‘빛과 실’의 주제의식이다. ‘빛과 실’은 이른바 금(金)실, 즉 빛을 내는 실을 풀어 쓴 것이다.
이번 책에는 5편의 시를 포함해 총 12편의 글이 실렸다. 이 중 3편은 지난해 12월 노벨문학상 시상식과 관련된 것들로 수상자 강연 전문 ‘빛과 실’, 시상식 직후 연회에서 밝힌 수상 소감 ‘가장 어두운 밤에도’, 노벨상 박물관에 찻잔을 기증하며 남긴 메시지 ‘작은 찻잔’이다. 보통 수상 소감 같은 내용은 책의 뒤쪽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맨 앞에 배치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수상자 강연이 자신의 세계관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이들 3편 다음으로 시 ‘코트와 나’ ‘북향 방’ ‘(고통에 대한 명상)’ ‘소리(들)’ ‘아주 작은 눈송이’ 등 5편과 산문 ‘출간 후에’와 ‘북향 정원’ ‘정원 일기’ ‘더 살아낸 뒤’ 등 4편이 실렸다.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된 것은 ‘북향 정원’ ‘정원 일기’ ‘더 살아낸 뒤’ 등 산문 3편이다. ‘북향 정원’은 한강이 2019년 네 평짜리 북향 정원이 딸린 집을 산 이후 정원을 가꾸며 경험한 일을 다룬다. 빛이 얼마 들지 않는 북향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며 새삼 빛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과정이 특유의 무덤덤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장으로 표현됐다. ‘정원 일기’는 정원을 가꾸며 겪은 일을 날짜별로 기록한 일기 형식이다.
마지막 글인 ‘더 살아낸 뒤’는 산문인데 너무 짧아 운문으로도 읽힌다. 한강은 이 글에서 “더 살아 낸 뒤, 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라고 썼다. 1만 5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