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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종-추모글] 사람들 사이에 다리 놓고 싶었던 성자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서강대 명예교수


한 달 넘게 사경을 헤매다 퇴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엊그제 부활절까지도 신도들에게 얼굴을 보이고 부활 메시지를 들려주더니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부활절 다음 월요일이면 집집이 점심을 싸들고 교외로 소풍을 나가는 관습이 있는데, 바로 그 ‘엠마오 날’을 잡아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떠나는 모습은 5년 전 코로나가 창궐하던 때 비내리는 성베드로 광장을 휘적휘적 혼자 걸어 올라가던 광경을 떠올린다.

아르헨티나인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베드로의 266대 후계자로 소개되던 2013년 3월 13일 저녁 성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에 모습을 보이면서부터 그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느님의 어릿광대를 자처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를 역설하던 성자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땄을 뿐더러 바티칸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거창한 폼으로 하늘의 축복을 내리는 대신 허리를 굽히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하던 모습이 신선했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 가진 상견례에서도 ‘교황(Pontifex)’이라는 자기 칭호가 몹시 어색했던지 “이 칭호는 ‘다리를(ponti-) 건설하는 사람(-fex)’,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인간들과 국가들 사이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교황직에 선출되던 자리에서부터 하메스 추기경한테서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시오”라는 충고를 새겨 들었고,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시오”라는 유언을 주변에 남기고 눈을 감았다.

성염(왼쪽) 전 주교황청 대사가 2013년 11월 바티칸 내 교황 거처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다. 성염 대사 제공




필자는 교황을 만날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13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소성당의 아침미사에 참석한 자리였다. 미사 후 인사를 나누는 기회가 오자 필자는 그분의 손을 붙잡고 당부했다. “교황님,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이 한국입니다. 부디 제일 먼저 한반도를 찾아오셔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격려해 주십시오.” 교황은 지긋한 시선으로 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슨 얘긴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듬해 이뤄진 교황의 방한에 앞서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차관이 한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조문서 ‘복음의 기쁨’을 소개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한국에서 유난히 당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신앙인의 하소연에 귀기울이고 갔다. 방한 중 교황이 세월호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니고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는 모습은 우리 국민을 감동시켰고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이 못마땅해 리본을 떼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달라는 어느 한국인 고위 성직자의 요청에 “타인의 고통에 중립은 없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두번째로 만난 것은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인사를 전하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교황청에 특사로 갔을 때다. 그 이튿날이 트럼프 대통령의 교황 예방이 예정돼 있던터라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미국 대통령이 북한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나라는 제안을 교황이 내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의 요청은 실제로 이뤄졌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미국 네오콘의 개입으로 실효 없이 끝나고 말았다.

교황직 취임사부터 “창조계와 인류를 보존하는 일”을 교회의 사명으로 천명하던 일, 전 세계 13억 명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 시대에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밖으로, 세상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문을 두드리신다. 거리로 나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가 되자”라던 호소, ‘문화충돌’을 가장해 아랍국들을 침략하고 가자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세계를 향해 “우리는 야금야금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고!”라는 경고를 남기고 떠난 그는 역대 교황들이 묻힌 성베드로 대성당의 지하 대신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별도의 장식품 없이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영면에 들어서도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의 곁에 함께 하고자 한 교황께서 주님과 성모 마리아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한다.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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