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지난 3개월 동안 7.96% 하락할 때 대륙간거래소(ICE) 달러인덱스(DXY)도 8.99% 떨어졌다. 증시가 하락할 경우 대체로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관세정책이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를 흔들어놓은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달러 불확실성에 투자자들이 다른 자산을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달러를 떠난 투자자들이 눈을 돌린 대표적 통화는 스위스프랑이다.
스위스프랑의 가치는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2일 1.1334달러에서 16일 장중 1.2299달러로 7.8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유로화와 금값의 상승률보다 훨씬 높다. 스위스프랑의 가치는 2011년 유럽 부채 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1848년 도입된 스위스프랑은 함유된 은의 가치가 액면가보다 높아 ‘녹여 팔 수 있는 화폐’로 불리기도 했다. 1907년 스위스 국립은행 설립 이후 스위스프랑은 엄격한 금본위제를 유지했다. 1999년 금본위제 폐지 전까지 발행 통화의 40%를 금으로 뒷받침하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뒤에도 스위스프랑이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는 것은 영세중립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독립적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물가 안정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확산되면 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달러인덱스가 3개월 동안 9% 가까이 하락했지만 원화 가치는 3% 상승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유로화는 11.6%, 스위스프랑은 11.1%, 엔화는 10.5% 상승했는데 원화의 상승 폭은 이들 통화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반면 원화의 변동성은 3배 이상 커졌다. 고환율과 환율 변동성 확대는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고환율이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