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국산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필름에 대한 덤핑률 재심사에 착수했다. 중국 제조사들이 우리 정부로부터 덤핑방지관세를 부과받고도 밀어내기 수출에 나서고 있다는 국내 기업의 신고에 따른 것이다. 정부가 국내 업체의 신고로 덤핑률 재심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3일 기획재정부와 무역위원회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9일 중국의 톈진완화(Tianjin Wanhua)와 캉후이(Kanghui)가 한국에 수출하는 PET 필름에 대한 덤핑률을 다시 심사하고 있다. 덤핑률은 원가를 반영한 정상 판매가 대비 비정상적인 할인 판매가율을 의미한다.
앞서 정부는 2023년 5월 톈진완화와 캉후이의 PET 필름을 비롯해 중국의 10개 제조사와 인도의 3개 제조사가 판매하는 PET 필름에 덤핑방지관세를 물린 바 있다. 톈진완화와 캉후이가 부과받은 반덤핑관세율은 각각 3.84%와 2.2%였다.
그러나 올해 2월 코오롱인더스트리·SK마이크로웍스·효성화학·화승케미칼 등 국내 업체가 톈진완화와 캉후이의 덤핑률이 더 높아진 것으로 의심된다며 재심사를 요청했다. 기존 판매가보다 더 후려친 가격으로 국내에 수출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9일 재심사를 개시해 향후 6개월간 조사할 예정이다. 이들 업체가 실제로 덤핑률을 높인 사실이 확인될 경우 정부는 수정된 관세율을 적용해 2028년까지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중국 내에서 판매되는 PET 필름의 가격보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더 낮다고 보고 2023년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상 덤핑방지관세가 매겨지면 5년간 변동 없이 덤핑률을 부과한다”면서 “해당 제조사 물품의 국내 수입량과 시장점유율 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국내 업계의 신고를 계기로 재심사에 돌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덤핑률 재심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2001년 72.41%의 덤핑방지관세가 부과되고 있던 중국산 일회용 포켓 라이터 케이스에 대해 재심사를 실시한 적은 있지만 이 때는 중국 공급자 ‘신하이’가 덤핑률을 재산정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이번에는 추가 피해를 우려한 우리 기업들이 재심사를 요청한 것이어서 사정이 다르다.
중국 업체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에 덤핑 수출을 하는 것은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PET 필름의 수요가 줄어든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과잉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PET 필름은 투명하고 외부 충격·열에 강한 소재로 전기전자 제품, 보호 필름, 포장 소재로 주로 쓰이며 중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PET 필름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KOTRA에 따르면 중국 PET 필름 생산량은 2016년 연간 207만 톤에서 2021년 276만 톤으로 33.3% 증가했다.
무역위 관계자는 "과거와 달라진 한국과 중국 상황을 반영해 제품 시장을 다시 분석할 것”이라며 “실제로 덤핑 마진이 더 올라갔는지는 실제 조사를 통해 판단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제2의 PET 필름이 더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중 관세 전쟁으로 인해 미국 시장으로 들어가지 못한 제품들에 대한 중국의 밀어내기 경향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중국 내부에서도 공급이 늘면서 중국 내 가격이 떨어진다고 하면 덤핑 마진이 줄어들기 때문에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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