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상호관세 부과일인 9일(현지 시간) 교역국과의 협상에 본격 착수했다. 자국의 협상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일단 예고한 대로 고율의 관세를 매긴 뒤, 상대국이 마련한 ‘선물’에 따라 향후 대응 수위를 조절하려는 수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등 대미(對美) 무역적자가 큰 국가와의 협상을 먼저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백악관은 8일(현지 시간) 상호관세 등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별로 맞춤형 협상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가별 상호관세는 한국 시간 이날 오후 1시를 기해 발효될 예정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70개 가까운 국가가 협상을 위해 미국과 접촉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최고의 제안을 가지고 오면 이를 참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상원 청문회에서 단기에 관세 면제는 어렵겠지만 대안을 제시하면 협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의 미국 공산품 ‘무관세’ 제안이 “불충분하다”고 어깃장을 놓고, ‘관세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통화가 끝난 이후 “일본은 무역에서 미국을 나쁘게 대했다”고 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관세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 내 비둘기파(온건파)로 분류되는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협상 전면에 나선 것에 주목하며 미국이 강경한 관세 정책에서 협상으로 ‘모드’를 변경한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별 맞춤형’ 협상의 일환으로 한국과 일본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하고 관세 문제 등을 논의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SNS 트루스소셜에 “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비용 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양국 간 무역 협상을 본격 시작한 것이다. 당장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와 협의하기 위해 이날 미국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7일 방미해 정상회담을 한다. 46%의 관세를 맞은 베트남도 부총리를 미국에 급파했고 32% 관세로 충격을 받은 대만도 부총리 격인 부행정원장이 방미길에 오른다.
관심은 교역국이 제시한 조건이 트럼프 대통령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한 후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교역국들과) 무역과 관세에서 다루지 않는 다른 무역과 관세 외의 다른 사안들도 함께 협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원스톱 쇼핑’이라는 아름답고 효율적인 방식”이라며 그가 강조하고 있는 ‘최고의 제안’ 수준을 짐작하게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보복관세로 맞대응한 중국에 대해서는 1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취임 후 부과한 20%와 상호관세 34%에 더해 보복관세에 대응한 50%를 얹어 104%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백악관은 “중국이 협상을 위해 연락할 경우 대통령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할 것”이라며 협상의 문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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