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작곡을 하면서 진화해 간 방향은 ‘통일’이에요. 서로 손잡고 화합하는 메시지 때문에 악장이 구분된 소나타를 더 큰 하나로 계속해서 만들려고 했어요. 어느 시대보다 그 음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 최희연(사진)은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베토벤 소나타 전집’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베토벤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되어가고 있는 현상이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보통 소나타는 3~4악장으로 구성되지만 베토벤은 후기 소나타들에서 이 구성을 뒤엎었다. 소나타의 형식을 진화시켜가면서 후기에는 이러한 틀을 깨어버린 것인데 이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비슷한 형식이다. 고전 형식에는 엄격함이 있었는데 베토벤은 이 엄격한 규율을 일생에 걸쳐 바꿨다. 악장을 해체하고 마침내 화합을 이뤄냈다는 점을 현 시점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희연은 여섯 살 때 인천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며 데뷔했고 비오티, 카펠, 에피날, 부소니 국제 콩쿠르 등에서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4년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선보이며 ‘베토벤 스폐셜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32곡을 9개의 CD에 담은 음반을 발매했다. 2015년 첫 녹음을 시작한 이후 약 10년이 걸렸을 만큼 음반을 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미치도록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어머니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어머니가 베토벤을 특별히 좋아했다”며 “일찍이 아버지와 사별하고 어려운 시기에 제가 베토벤 곡을 연주할 때면 뛰어와서 ‘작곡가가 누구냐’,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베토벤 음악은 어머니께 힘과 용기를 줬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베토벤 음악의 특징은 항상 문제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발전부인데, 해결 과정이 속을 후련하게 해주고 천재적이고 카타르시스를 준다"며 "어떤 드라마틱한(극적인)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신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희연은 베토벤 소나타를 녹음하는 10년 동안 숱한 일들이 있었지만년간 그의 음악을 더 알아가면서 재미가 더해졌다고 했다. 녹음하는 과정에서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베토벤 소나타를 녹음하기로 결정한 것은 2015년보다 10여년 앞선 2003년이다. 그러나 2004년 결혼 뒤 임신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이를 잃을 수도 있던 상황이라 녹음을 중단했었다고 한다. 이후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후원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녹음은 무한 연기됐다. 그러던 중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로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을 받으면서 그의 열정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2015년 녹음을 시작한 이후 자신의 베토벤 연주 실력에 대한 회의감으로 중단하기도 했지만, 프로듀서 마틴 자우어, 조율사 토마스 휩시 등의 격려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특히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가 버팀목이 됐다.
그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연주곡은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과 30번, 31번, 32번 소나타다. 최희연은 "후기 소나타 세 곡(30·31·32번)이 중심이다. 최근 들어 제가 가장 친밀함을 느끼는 곡들"이라고 소개했다. '발트슈타인'은 베토벤 곡 연주와 녹음을 도와준 고(故) 한스 라이그라프 교수, 고(故)故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회장, 고(故)故 문계 음반 수집가에게 헌정하는 마음을 담아 선곡했다. 이 곡은 베토벤이 후원자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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