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공포가 시장을 뒤덮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 다음날인 3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는 폭락하면서 3조10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월가 기관들이 관세 영향을 반영해 서둘러 수정한 경제 전망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gltion·저성장 속 고물가) 기미가 뚜렷했다. 시장은 관세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와 교역 감소로 인한 산업활동과 수요 둔화, 기업 실적 감소, 공급망 교란 등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3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679.39포인트(-3.98%) 하락한 4만545.9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274.37포인트(-4.84%) 떨어진 5396.60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1050.44포인트(-5.97%) 급락한 1만6550.61에 장을 마감했다. CNBC에 따르면 다우존스와 S&P500의 이날 낙폭은 2020년 6월 이후 가장 컸으며 나스닥의 하락폭은 2020년 3월 이후 가장 컸다. 각각 팬데믹이 선포된 직후 가장 큰 규모다. 2022년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오르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이 가속화되던 시점보다 이날 낙폭이 더욱 컸다.
애플은 9.32% 하락했다. 중국 등 해외 생산 아이폰에 대한 미국내 판매 가격 상승 우려 등 때문이다. 웨드부시의 분석가인 댄 아이브스는 “이번 관세 발표는 월가가 우려햇던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나쁘다”며 “기술주식은 수요 파괴, 공급망 교란, 중국과 대만에 대한 고관세로 인해 큰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은 8.98%, 메타는 8.96% 내렸으며 델과 HP는 각각 18.99%, 14.71% 폭락했다.
관세로 인해 글로벌 경제 활동이 위축된다는 전망은 은행주에도 직격탄이 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주식이 11.06% 하락한 것을 비롯해 JP모건 체이스와 웰스파고도 각각 6.97%, 9.12% 떨어졌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호관세를 부과한 동남아 지역에서 주요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스포츠웨어 기업 나이키(-14.44%), 의류 전문업체 갭(-20.29%), 기능성 스포츠웨어 업체 룰루레몬(-9.58%)도 일제히 폭락했다.
중국산 저가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대형 유통업체 파이브빌로우는 27.81%, 달러트리는 13.34%% 미끄러졌다.
“관세 전쟁이 지정학 갈등으로 이어지면 어쩔건가”…월가선 애플의 중국 판매금지 시나리오도 우려
이날 증시의 하락은 우선 표면적으로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관세의 수준이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았다는 데서 비롯됐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뒤늦게 관세 여파가 가격에 반영됐단 설명이다. 그동안 적정 관세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앞서 상호관세 발표전 시티그룹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우리의 기본 전망, 그리고 시장의 컨센서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관세가 미국 수입품의 약 절반에 대해 평균 10% 수준이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는 이번 발표에서 10%는 각국에 부과된 최소 관세 수준이었다. 생츄어리웰스의 수석 투자전략가인 매리 안 바텔스는 “이번 발표는 관세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였고 이 시나리오는 시장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위험 회피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기관들은 서둘러 관세의 경제 여파를 반영하고 나섰다. 영국의 글로벌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스는 날 2025년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1%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3.7%일 것으로 봤다. 노무라 증권은 올해 GDP 상승률이 0.6%에 그치는 동시에 근원 물가상승률이 4.7% 수준으로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2V리서치의 이코노미스트 피터 윌리엄스는 “현재 정책기조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올해 근원 PCE 변동률은 4~5% 범위로 상향조정돼야 한다”며 “하루 전 만해도 3% 초중반이 적절해 보였지만 이제는 2차 물가 상승파동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월가는 경제 둔화를 넘어 각국이 보복에 나서면서 세계 정세가 급랭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자산리서치 매니징디렉터인 에릭 우드링은 "미국에서 애플이 관세에 따른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17~18% 정도 가격을 인상해야 할 것으로 본다"며 "이는 수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가 우려하는 것은 관세 전쟁이 기업 실적 둔화로 그치지 않고 지정학 문제에 따른 기업들의 운영 안정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모건스탠리의 자산리서치 매니징디렉터인 에릭 우드링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애플은 중국에 직간접적으로 700만명의 직원을 두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중국이 ‘아이폰을 중국에서 만들 수는 있지만 판매할 수는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며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유형의 환경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애플은 중국에서 약3000만~3500만대의 아이폰을 판매하고 대당 평균 판매가격을 약 1000달러고 가정하면 연간 최대 350억 달러가 된다. 우드링 디렉터는 “(관세 문제가 보복으로 이어져) 중국 시장 판매가 중단된다면 최대 350억 달러의 매출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강달러’ 깨지는 공식…트럼프는 "예상했던 수순…증시 ‘붐’ 올것”
이날 미국 국채는 세계 경제의 위축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매수세가 붙었다. 2년물 국채 금리는 12bp(1bp=0.01%포인트) 급락한 3.741%에 거래됐으며 10년물 국채도 8bp 떨어진 4.051%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달러 가치도 하락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이날 1.79% 하락한 101.95에 거래 중이다. 이는 트럼프 당선 전인 지난해 10월 2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대로 유로화는 전날보다 1.5% 넘게 오르며 작년 10월3일 이후 처음으로 1.10달러를 돌파했다. 관세 공포에 위험자산이 폭락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달러 대신 유로화와 엔화 등 다른 기축통화로 안전자산 수요가 몰린 탓이다. 그동안 관세는 미국의 교역 상대국 경제를 약화시키고, 달러 수요가 늘려 강달러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인식됐지만, 관세 정책이 추진될 수록 미국 경제에 부메랑이 될 것이란 전망이 커지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금융시장의 반응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식 시장 하락에 대한 질문에 “나는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환자가 수술을 받는 것과 같은 큰 일이었고, 나는 정확히 이런 식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주식 시장은 붐을 일으킬 것이고 우리 나라는 붐을 일으킬 것”이라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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