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24일 복귀 일성은 ‘극단의 정치 극복’이었다. 지난 넉 달간의 탄핵 정국을 거치며 갈 데까지 간 국민 분열을 봉합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앞날에는 불행만 있다며 정치권에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한 권한대행은 복귀 첫 행보로 전국 산불 상황을 점검했고 미국발 통상 압박의 돌파구를 찾는 일에도 국가적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87일 만에 직무에 복귀한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열어 국정 안정에 온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담화문은 국민 통합 호소문에 가까웠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를 “극단으로 갈라진 사회”라고 부르며 “(이대로라면) 불행으로 치달을 뿐 누구의 꿈도 이루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제 좌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로지 우리나라가 위로, 앞으로 발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제”라며 여야에 초당적 협치를 부탁했다.
한 권한대행은 “저부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국정을 이끄는 동안 모든 결정은 대한민국 산업과 미래 세대 이익에 해당하는지에 입각해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한 권한대행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새 지정학적 대변혁과 경제 질서 재편에 직면했다”며 “통상 전쟁에서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강조했다. ‘대대행 체제’로 한계가 뚜렷했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발 통상 리스크 대응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한 권한대행은 직무 정지 기간 동안 미국 관세 부과, 무역 보고서 등을 읽으며 대처 방안을 숙고했다고 한다.
김홍균 외교부 차관은 이날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와 통화를 하고 한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흔들림 없는 동맹 관계를 구축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윤 대사대리는 “미국의 확고한 지지에 변함이 없다”며 “긴밀한 소통을 유지해나가자”고 호응했다. 대미 외교의 급이 부총리에서 국무총리로 높아진 만큼 한 권한대행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도 재추진될 방침이다. 또 미국 통상정책 방향을 점검하는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는 민간 전문가들도 보강하기로 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숨 가쁜 행보를 이어갔다.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찾아 산불 대응 현황을 점검하며 업무를 개시한 그는 경북 의성군 산불 현장을 찾아 진화 상황을 살핀 뒤 이재민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이후 서울에 올라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안보 태세를 점검하는 일정으로 하루를 마쳤다. 한 권한대행은 이 자리에서 “오늘날 안보정책과 경제정책은 분리될 수 없다”며 “우리 기업들이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부처가 협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정 안정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한 권한대행은 외교·안보 현안,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생·경제 현안에 대해 각각 사령탑을 맡아 정국 불확실성 최소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위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부처별 상황을 보고받았다. 그는 “국정운영을 위해 흔들림 없이 노력해주신 것에 감사하다”며 “민생과 직결된 주요 현안을 속도감 있게 진척시키는 것이 내각의 사명”이라고 심기일전을 독려했다.
다만 한 권한대행의 당부와는 반대로 여야 관계는 경색되는 모양새다. 헌재가 이날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는 헌법·법률 위반에 해당하지만 직위를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놓으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전 마은혁 헌법재판관이 임명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는 평가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마 후보자 임명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 질문에 침묵으로 답했다. 정부 관계자는 “마 후보자 임명 관련한 한 권한대행의 언급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권한대행의 운신의 폭을 좁힐 만한 민감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점 역시 부담이다. 야당이 김건희 여사 의혹 상설특검 임명 압박에 당력을 집중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상법 개정안, 연금 개혁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요구도 쏟아지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주무 부처의 의견을 경청한 뒤 결정할 사안”이라며 “25일 국무회의에서 결정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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