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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동토인 알래스카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가스 생산과 1300㎞ 길이의 가스관, 액화 터미널 등 건설 분야까지 모두 합해 총 64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이 사업에 한국이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각각 수조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발언을 미국 상∙하원 의회 합동 연설이라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공개 석상에서 하면서 말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왜 국가 간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사업 참여를 기정 사실화 한 걸까요? 그의 요구에는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그가 보낸 초청장의 의미를 추적하다 보면 세계 에너지 시장의 상황과 이에 대한 미국의 에너지 전략이 배경에 깔려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왜 아시아 국가들을 겨냥했나
첫 번째 궁금증이 드는 것은 왜 아시아 국가를 콕 집어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를 요구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의회 합동 연설만 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라며 일본과 한국의 경우 직접적으로 언급됐죠. 이달 21일 대만이 선제적으로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 ‘다른 나라’ 가운데 하나가 대만이라는 사실이 역으로 확인된 셈입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동아시아 국가들이네요.
물론 한국(8위, 2024년 기준)과 일본(7위), 대만(6위) 모두 미국의 주요 무역 적자국에 속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며 관세를 휘두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무역 적자국을 일부로 겨냥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이유 역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동아시아의 LNG 수요가 가장 많다는 점인데요. 아시아 지역은 2021년 기준 세계 LNG의 73% 이상을 수입했습니다. 최다 수입국인 중국을 포함해 일본∙한국∙대만∙인도 등 국가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미국이 LNG 수요가 많은 아시아 국가들을 특정해 사업 참여를 요구한 것이죠.
LNG 산업 자체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측면이 있습니다. 에너지 석학인 대니얼 예긴은 책 ‘뉴 맵’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일본∙대만에서 수요가 급성장한 것이 LNG 산업 발전의 발판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LNG 계약이 통상 20년 안팎 단위의 장기 형태를 띄게 된 것도 이들 아시아 국가의 경제 발전에 힘 입은 LNG 수요가 배경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LNG를 많이 쓸 거면 아예 우리 사업에 직접 참여해서 미국 LNG를 더 많이 수입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한미 ‘에너지 동맹’이 큰 그림?
앞서 많이 보도된 대로 알래스카 LNG 개발은 엑슨모빌, 브리티시페트롤리엄 등 오일 메이저들도 참여를 선언했다 두 손 들고 철수한 난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중국도 트럼프 집권 1기 시절 무역 협상의 일환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현재는 사실상 손을 뗀 상태로 알려졌죠. 경제성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입니다.
예긴은 ‘뉴 맵’에서 미국의 셰일 사업이 제조업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유정이나 가스정과 달리 셰일 방식은 1년 정도만 지나면 생산량이 현저히 줄어들고, 따라서 기업들은 새로운 유정이나 가스정을 재빨리 찾아야 타산이 맞는다는 것인데요. 한 마디로 투자 비용이 크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LNG 수출 대국으로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가스 생산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데, 미국 기업들 만의 힘으로 생산을 확대하는 것에 한계가 있겠죠. 이럴 때 외국 투자 유치는 미국 입장에서 유효한 전략일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왜 LNG 생산 확대와 수출 증대에 주력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에너지 안보와 연관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셰일 혁명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을 크게 높였죠. 이로 인해 미국의 에너지 중심 축도 석유에서 가스로 옮겨졌습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석유는 단기적으로 의미 있는 성장을 하지 못할 것이지만, 가스 생산량은 향후 2~3년 간 극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해 미국 대선 유세에서 “우리는 천연가스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살고 있다”고까지 말했죠. 생산량 증대의 최종 목표는 수출 확대입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 가스에 의존한 유럽을 미국산으로 대체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로 가스 수요가 높은 아시아 수요를 겨냥하며, 데이터 센터 연료가 필요한 선진국에 LNG를 공급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셰일 가스를 앞세워 미국이 세계 에너지 안보를 장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요구는 미국과 에너지 동맹을 맺으라는 요구(또는 압박)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LNG 확대라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국가로 남을 것인지 묻고 있는 셈이죠. 당장 24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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