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 시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발표한 통화정책 결정문에는 시장이 크게 예상하지 못한 정책이 포함됐다.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의 양을 줄이는 양적긴축(QT)의 속도를 줄이는 내용이다. 이번 조치로 연준은 그동안 월 최대 250억 달러 였던 미국 국채를 감축 한도를 50억 달러로 줄였다. 지난해 5월 한도를 월 60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줄인 이후 10개월 만에 추가 속도 감축이다.
파월은 이 조치가 의회와 행정부가 정부 부채 한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원활하도록 준비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통화정책이나 궁극적인 대차대조표 규모와는 상관이 없다"며 “여기에는 여러분이 알아내야 하는 은밀한 신호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이 조치는 경제 경고음이 커졌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주목해야만 한다”며 “이는 시장이 국채 공급을 받아낼 수 있는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연준이 판단했는 점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금융 시장의 스트레스 예방 차원이라는 연준의 설명과 달리 국채 시장의 위기 가능성을 우려하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QT축소해 은행 유동성 감소 속도 '더 느리게’…파월 “정부 부채 관련, 착륙 활주로 늘린 것”
QT는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나 모기지담보증권(MBS)의 양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시중의 유동성을 낮추는 조치다. 통상 연준은 가지고 있는 국채의 만기가 도래하면 받은 원금으로 다시 국채를 산다. 이에 연준의 대차대조표에는 일정량의 국채나 MBS가 유지되고 있다.
이때 매달 만기 때 받은 투자 원금 보다 더 많이 국채를 사면 연준의 보유 국채는 늘어난다. 이른바 양적완화(QE)다. 연준은 코로나19 당시 경기침체 기미가 보이자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QE를 실시했다. 연준이 시중은행으로부터 국채를 사주면 시중은행들의 유동성은 늘어난다. 동시에 국채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국채 금리도 낮아진다.
이런 QE를 반대로 돌린 것이 QT다. 2022년 6월부터 인플레이션이 커지면서 연준은 늘렸던 국채와 MBS의 양을 줄여나갔다. 만기가 도래해 받은 채권 투자 원금 중 한달에 최대 600억 달러는 재투자에 쓰지 않고 소멸시키는 식이다. 그 효과도 QE의 반대다. 국채 시장에서 연준의 수요가 줄면서 시중금리가 올라가고 은행 유동성이 줄어드는 구조다. 즉, QT는 시중 금리를 높이고, 유동성을 줄이는 게 목표다. 이런 QT의 규모를 줄였다는 것은 연준이 이제 유동성을 더 천천히 감축시키겠다는 의미다. 월가에서 이번 QT 속도조절을 두고 “간접적 금리 인하”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의 유동성을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가 예금기관들이 연준에 쌓아두고 있는 돈, 즉 ‘지급준비금(reserve)’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에 따르면 지급준비금은 코로나 직전 1조 7270억 달러 수준에서 2021년 9월 4조 20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가, 현재 QT를 통해 3조2500억 달러 수준 까지 내려왔다.
연준이 주목하는 부분은 이같은 유동성 덜어내기 작업이 행정부의 부채 한도 이슈와 맞물리면 시중 유동성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매년 채권을 발행해 빌릴 수 있는 돈의 한도를 지정한다. 이번 회계연도는 36조1000억 달러였는데, 문제는 이미 1월 21일 부로 한도가 다 차버렸다는 것이다. 이럴 땐 재무부가 써야할 돈이 있어도 국채를 계속 발행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조치’라고 부르는 임시 변통을 쓴다.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고 씀씀이를 줄인다. 민간기업과의 계약 대금 지급과 같이 꼭 써야하는 돈만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계좌에서 꺼내어 쓴다.
이 때 재무부가 돈을 꺼내 쓰는 계좌는 연준에 있다. 재무부는 의회가 부채 한도를 늘리는 협상을 타결해 새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을 때까지 ‘재무부일반계좌(TGA)’라고 부르는 재무부 전용 연준 계좌에서 돈을 꺼내 쓴다. 통상 재무부가 TGA에서 돈을 빼쓰면, 시중은행의 유동성이 늘어난다. 재무부가 TGA에 있는 돈으로 민간업체에 계약 대금을 지급하면, 그 업체의 거래 은행 계좌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즉, 재무부가 연준에서 돈을 빼 쓸수록, 시중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은 늘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의회가 부채한도 문제 협상을 타결한 이후다. 재무부는 그동안 썼던 연준 내 계좌(TGA)를 채우기 위해 국채 발행량을 늘린다. 시중은행이 늘어난 미국 국채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시중의 유동성은 급감할 수 있다. 의회의 부채한도 협상이 지연될 수록 유동성이 급감할 가능성은 커진다. 파월 의장은 “지금 준비금은 충분해 보이지만 재무부의 TGA가 줄어들고 준비금은 늘어나고 있어서 기본 신호를 볼 수 없다는 견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유동성 급감은 금융시장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이 주시하는 사례는 은행간 거래에서 자금이 급경색됐던 2019년 사례다. 당시 전체 지급준비금은 작은 규모가 아니었음에도 은행별로 준비금이 넉넉지 않은 곳이 있었던 데다 세금 납부 기한 등 은행들의 현금 수요가 몰리면서 연 2% 대였던 은행 간 대출 금리가 10%로 치솟았다. 당시 연준은 실물 경제로 위기가 번질 수 있다는 우려에 직접 은행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면서 겨우 불을 껐다.
이번에도 연준이 QT를 통해 시중 유동성을 빼내는 상황에서 부채한도 문제 해결 이후 유동성 감소까지 더해지면 금융시장의 유동성 스트레스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미리 QT 속도를 늦춰 유동성이 감소하는 속도를 늦추고자 하는 것이 연준의 취지다. 파월 의장은 “착륙을 위해 들어오는 비행기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QT 속도를 대략 절반으로 줄임으로 써 활주로가 두배로 길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서머스 “QT는 장기국채 금리 급등 대비한 것…‘리즈 트러스 리스크 반영”
재무부 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이와 달리 미국 국채 시장의 불안을 우려한 조치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머스 교수는 20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것(QT 속도 감축)은 영국에서 일어났던 사고였던 ‘리즈 트러스’ 리스크를 억제하기 위한 연준의 정책”이라고 해석했다. 2022년 9월 영국 신임 총리였던 트러스 총리는 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을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감세안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정책 불안감에 영국 국채 금리가 치솟으며 유럽과 미국까지 금융 위기 우려가 확산되기도 했다. 당시 사태로 트러스 총리는 45일만에 퇴임해 최단기 영국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서미스 교수는 감세 정책이나 이민자 추방 등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취약성으로 인해 국채 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을 연준이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국채 금리가 하락하는 등 미국 국채 수요가 안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QT를 감축해 유동성 고갈을 늦춘 점에 주목했다. 서머스 교수는 “(이번 QT는) 우리가 듣고 있는 재정정책에 관한 거의 모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서머스 교수의 의견이 소수파에 가깝다. 만약 연준이 의회의 부채한도 협상이 끝난 후 QT의 속도를 다시 높인다면 정책 의도가 ‘부채 이슈 관리’라는 점이 증명될 수 있다. 다만 파월 의장은 현재로서는 “이 경로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속할 뜻을 밝히고 있다.
또다른 소수 의견은 관리 차원이든 국채 위기 경고음이든 지금은 유동성 우려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QT 축소 자체가 때이른 결정이란 것이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준비금이 적절한 수준으로 감소하면 QT를 늦추거나 중단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준비금은 3조 달러가 넘어 풍부하다”고 말했다. 월러는 이에 19일 정책결정 당시 금리 동결에는 찬성했지만 QT 축소에는 유일하게 반대했다. 여기에는 금융시장의 불안보다 인플레이션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이 녹아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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