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미국 에너지부(DOE)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된 가운데 미국 국립연구소 계약직 직원이 원자력 설계 소프트웨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다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대리도 “민감한 정보가 부주의하게 취급된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17일(현지 시간) DOE 감사관실(OIG) 보고서에 따르면 DOE 산하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는 수출 통제 대상인 핵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계약직 직원을 해고했다. 구체적인 시점은 확인할 수 없으나 해당 보고서는 2023년 10월 1일부터 지난해 3월 31일까지 다루고 있다. OIG는 해당 직원의 e메일과 채팅 기록을 조사해 그가 수출 통제 제한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 및 외국 정부와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사건은 현재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가 공동으로 조사 중이다.
일각에서는 INL과 공동 연구를 해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루 가능성을 지목했으나 원자력연 측은 “본 연구원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사건이 우리나라의 SCL 등재에 직접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은 우리 측에 한국 연구원들이 DOE 산하 연구소 등과의 협업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어긴 사례가 적발돼 명단에 포함했다는 취지로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역시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DOE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라고만 설명했다. 보안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OIG 보고서에 적시된 사례 외에도 여러 차례 보안 규정 위반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윤 대사대리는 1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와 주한미국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좌담회에서 “DOE 산하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등 민감한 자료가 있는 연구실에 지난해에만 2000명 넘는 한국 연구원·공무원 등이 방문했다”며 “그러다 보니 일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취급 부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SCL에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사대리는 “DOE 연구소에만 국한된 것으로 큰 일이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이는 것과는 상당한 온도 차다. 윤 대사대리는 이어 한미 간 원자력 수출·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 체결을 언급하며 “양국이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SCL 포함이 인공지능(AI)이나 생명공학 등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답했다.
정부는 SCL이 확정되는 다음 달 15일까지 최대한 미국을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우리나라가 명단에서 빠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미 회계감사원(GAO) 보고서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SCL에 올랐다가 우리 측의 시정 요구와 국내외 정세 변동을 계기로 1994년 7월 제외된 선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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