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환자와 국민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의정 갈등 이후 의대생·전공의들 편에 섰던 의대 교수들이 입장을 바꿔 의대생과 전공의를 질타했다. 정부가 백기 투항에 가까운 양보안을 제시했음에도 강경 투쟁 입장만 고수하고 있고 복귀 의사를 밝히는 동료들에게는 도 넘은 비난까지 가하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판단한 것이다. 서울대·연세대 의대 등의 등록 기간 마지노선(3월 말)이 다가오는 가운데 기한 내 등록하지 않을 시 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학교 측의 강경 대응에 의대생 사이에서도 동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강희경 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하은진·오주환·한세원 서울의대 교수 3명과 공동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복귀하지 않는 의대생·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친다”며 “정말 내가 알던 제자·후배들이 맞는가. 이들 중 우리의 제자·후배가 있을까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또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며 “생산직·서비스직 노동자들은 12시간 넘게 서서 일하면서도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의 삶이 여러분 눈에는 보이기는 하느냐”고 질타했다.
서울의대 교수들이 전공의와 의대생을 질타한 배경에는 의대 특유의 수직적인 분위기와 선배의 강경 일변도 대응에 순응하는 의대생들의 침묵이 있다. 대학·정부의 연이은 소통 요청에도 학생들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점을 직격한 셈이다. 최근 건국대 의대 일부 학생들이 “수업 복귀자를 더 이상 동료로 간주하지 않으며 향후 모든 학문적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등 복귀하는 의대생을 배신자로 낙인찍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이번에 의대생을 작심 비판한 교수들은 지난해 6월 의대 증원에 대한 반발에 공감해 ‘집단 휴진’을 결의한 바 있다. 의료계 반발 움직임에 동참해 정부에 각을 세웠던 강 교수 등이 의료계 단일대오를 흔드는 발언을 내놓은 셈이다. 이날 발표한 입장문이 의정 갈등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정 갈등 국면에서 의료계에 힘을 실어줬던 의대 교수들이 그간 입장을 뒤집으면서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 사이에서도 집단행동 중단에 대한 목소리가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각 의대가 복귀 시한으로 못 박은 3월 말이 다가오며 학생들도 동요하는 모양새다. 21일 등록 기한을 앞둔 연세대 의대생은 대학 커뮤니티에 “단일대오를 유지하자는 말에 동의하지만 혹시라도 제적당할까 봐, 까보니 등록한 사람이 많을까 봐 두렵다”고 올렸다. 다른 의대생도 “누군가 본보기로 제적당했을 때 책임질 사람이 있느냐”고 했다.
의대 지도교수들도 학생들이 복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충청권 의대의 한 교수는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만났을 때는 학교 측 방안에 대해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도 “대놓고 복귀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데는 의대 특유의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결국 개별적으로 학생들을 일일이 면담·설득하는 과정밖에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 건물에서 진행된 의대 1·2학년 전공선택 수업에는 4명만이 참여했다. 캠퍼스에서 만난 연세대 의대 대학원생 A 씨는 “의대 학부생은 (건물에서) 안 보이는 것 같다. 학교에서 제적 조치를 예고한 후에도 비슷하다”면서 “강의계획서가 대학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더라도 학생들이 수업에 오지 않아 아예 안 열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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