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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방화범의 특급 소방수 시늉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스스로 문제 만들고 해결한듯 치장

트럼프 전술로 우방국 신뢰 잃어

"대통령 승리" 보수언론 포장 안될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이를 처리한 후 자신이 문제를 해결했다며 승리를 선언하는 버릇이 있다. 우리와 같은 언론 종사자들은 이제 더 이상 방화범인 그의 화재 진압 능력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최근 2주는 대통령이 직접 만들어낸 국제적인 위기로 술렁였다. 트럼프는 이들 중 일부를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힌 고질적 문제로 규정했다. 나머지는 그가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위기 상황이다.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캐나다·멕시코와의 무역전쟁에서 트럼프가 구사하는 벼랑 끝 전술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 두 나라가 미국의 무역정책을 악용해 이익을 얻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의 집권 1기 동안 이들과 무역 협상을 벌인 장본인은 트럼프 자신이었다. 2020년 당시 중국 및 캐나다를 상대로 체결된 무역협정을 그는 “미국이 일궈낸 최상의 합의”라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의 불만은 하루가 멀게 달라진다. 때로는 미국이 너무 많은 물품을 수입한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를 최대한 부풀려 제시한다. 때로는 이웃 국가들에 이민 문제의 책임을 떠넘긴다. 최근 그의 주된 불만은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을 통해 밀반입되는 펜타닐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로 밀반입되는 전체 펜타닐 가운데 고작 0.2%가 캐나다 국경에서 압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트럼프와의 협상에 필요한 기술은 그가 팩트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를 알아챈 멕시코와 캐나다의 지도자들은 그동안 쭉 해왔던 일을 ‘고통스러운 양보’로 포장해 내밀었고 트럼프는 일단 이들의 성의를 잠정적으로 접수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과의 국경 지역에 1만 명의 군 병력을 주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멕시코 국방부에 따르면 전 행정부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이미 1만 5000명의 병력을 국경 지대에 배치했지만 트럼프는 이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멕시코는 빈껍데기 양보로 트럼프가 외교적 승리를 선언하는 데 필요한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에게 국경 강화 조치에 총 13억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와 동일한 내용의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경제를 산산조각 낼 무역전쟁의 뇌관을 직접 당긴 후 캐나다와 멕시코의 양보를 받아들여 관세를 잠시 유보한 트럼프의 결정을 보수 언론은 ‘대통령의 승리’로 규정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중요한 우방국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와의 다툼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콜롬비아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추방자들을 태운 미국발 상업용 항공편의 착륙을 정기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트럼프가 자국 출신 추방자들을 상업용 비행기가 아닌 군용기에 태워 보낸 것을 문제 삼아 1월 이들의 착륙을 불허했다. 쓸데없이 비싸고 공격적으로 보이는 군용기를 동원함으로써 우방인 콜롬비아 정부를 모욕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두 나라 사이에 관세와 보복 관세 엄포가 오갔고, 미국 내 커피값이 치솟았다. 결국 양국이 추방 비행 재개에 합의함으로써 과세 위협은 철회됐다. 주요 언론은 예측 불가한 그의 협박이 통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트럼프는 현 상태를 그대로 재포장했을 따름이다.

반면 이런 싸움을 일으킨 탓에 트럼프는 우방국의 신뢰를 상실했다. 실질적 적대국들과 중국을 비롯한 나라 밖의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적인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미국은 믿지 못할 우방이라는 사실을 트럼프가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미국에 호의적이었던 캐나다인들은 이제 미국 국가가 나올 때 야유를 터뜨리고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인다.

현 행정부는 의회가 승인한 프로그램의 예산을 끊고 관련 기관의 직원들을 대기 발령시켰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연방 지원이나 과학적 연구 혹은 예산 지급 문제 등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의 기본 구조를 망가뜨리고 있다. 결과는 처참하다. 일부 의료 연구원들은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고 전국의 유치원 프로그램의 예산은 끊어졌다.

‘체스터턴의 울타리’로 알려진 원칙이 있다. 왜 그 울타리가 세워졌는지 알기 전까지는 그것을 제거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체스터턴의 울타리로부터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원칙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언론의 긍정적 반응을 얻을 수 있다 해도 울타리에 화염병을 던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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