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이 시작되면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류를 절멸시키고 남을 만한 핵무기를 쌓아두고 살면서 우리는 ‘핵전쟁이 나면 모두 끝이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아니, 너무 끔찍한 가정이다 보니 아예 외면하고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안보 분야 탐사 전문 기자 애니 제이콥슨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밀한 픽션으로 눈앞에 제시한다. 이미 7권의 안보 관련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TV 프로그램 대본 작가로도 알려진 제이콥슨은 지난 15년간 방대한 자료 조사를 진행해 ‘24분-핵전쟁으로 인류가 종말하기까지’를 썼다. 핵무기 체계에 정통한 수많은 전직 안보 담당 고위 관료, 군인, 무기 개발자, 전략가들과의 인터뷰를 수백 건 이상 진행하고, 기밀이 해제된 안보 문서들을 섭렵한 작가는 최초의 핵 미사일 공격부터 종말의 순간까지 분초 단위로 입체적인 시나리오를 그려냈다.
북한의 한 황량한 들판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7’이 미국을 향해 발사된 지 1초도 되지 않아 미국은 한반도 상공에 띄워둔 정지궤도 위성 ‘시버스’를 통해 이를 탐지해낸다. 미사일이 워싱턴DC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은 33분 후. 미국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1메가톤급 열핵폭탄의 궤도를 훤히 들여다 보면서도 미사일 방어 프로그램만으로 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44기의 고고도미사일 방어 체계가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은 오는 총알에 총을 쏴서 맞추는 것과 비슷한 확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핵잠수함을 몰래 캘리포니아 연안까지 보내 탄도미사일(SLBM)로 핵발전소 공격까지 동시에 감행한다.
결국 미국은 ‘화성 17’이 북극 상공을 날아오는 도중인 ‘최초 24분’ 만에 북한의 주요 군사 시설과 김정은의 은신처를 향해 다수의 ICBM을 날린다. 미국의 반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한 러시아가 가담해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첫 미사일 발사부터 세계의 종말까지 걸리는 시간은 72분. 벙커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사망자들을 부러워하며”(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총리) 핵겨울을 맞이한다.
책은 지난해 4월 출간돼 미국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책의 원제는 ‘Nuclear War: A Scenario(핵전쟁, 하나의 시나리오)’다.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참혹하고 충격적인 가능성을 제시했기에 당연히 반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선 제3국의 오인으로 인한 확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저자는 분초 단위로 빠르게 전개되는 핵전쟁 상황에서는 펜타곤과 싱크탱크들이 계산하고 계획한 대로, 국제법에 따라 일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핵전쟁엔 규칙이 없다는 점을 군사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인류는 단 한 번의 오판, 단 한 번의 오산으로 핵멸종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핵무기를 통한 전쟁 억지 효과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다. 현재 전 세계 핵탄두 숫자는 1만 3000개로 추산된다. ‘상호확증파괴’를 두려워해 더 강한 핵무기를 보유할수록 전쟁이 억지되고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이 최근의 안보 논리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핵 버튼에 대한 권한을 가진 지도자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제정신’일 때만 핵 억지 논리는 작동한다. 그 중 한 명만이라도 ‘미친 왕’이 있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지옥도가 펼쳐질 수 있다.
저자는 핵 문제에 대한 일말의 해법 제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한 채 일상을 살고 있는 중대한 진실을 드러내고, 위험을 환기시키는 지점까지 저널리스트로서의 몫을 다한다. 책은 1945년 첫 핵폭탄 개발부터 냉전 시기 핵 군비 경쟁, 불량 국가로의 핵 확산 등으로 현재 고착화된 핵 체제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인류가 얼마나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일깨운다. 특히 핵무기에 ‘올인’한 예측 불가의 이웃을 두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이 주는 경고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488쪽.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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