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증원을 강행하면서 전국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반발해 의료 현장을 떠나버린 의료 대란이 벌써 1년이 지났다. 강 대 강의 극단적인 대치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던 가운데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로 나라가 대혼돈에 빠지면서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 같은 의료 대란은 손도 대지 못한 채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렸다. 의료 대란은 당장 언제 푸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지만 그 매듭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풀어갈지가 중요하다. 이환위리(以患爲利)는 근심을 이로움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작금의 의료 대란을 딛고 한국의 의료 수준과 의료 산업을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도약시켜야 한다.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해 주도적으로 새 길을 열어가는 응변창신(應變創新)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의료 환경은 세계적으로 디지털 전환, 정밀 의료, 환자 중심 의료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도 전통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다급해졌다. ‘혁신병원(Entrepreneurial Hospital)’은 혁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의료 서비스의 질과 운영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병원 운영 패러다임이다. 혁신병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술을 활용하는 혁신 중심 문화다. 혁신적인 의료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해 환자에게 빠르고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서 혁신 기술은 반드시 고도의 기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병원 현장 중심 기술에 더 가깝다. 의료 현장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파악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해결을 위한 창의적인 방법에 의료 기술이 점점 크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은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빠르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고 혁신 경영을 시도해야 한다.
혁신이 기업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병원 또한 혁신의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병원은 기초연구와 임상연구를 연결해 혁신적인 치료제, 치료 기기,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 또 병원은 데이터와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가치 창출에 앞장설 수 있다. 혁신 플랫폼이 되기 위해 병원은 의료진을 비롯한 병원의 모든 구성원과 환자·연구자·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개방형 혁신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병원은 단순한 치료 공간을 넘어 미래 의료 생태계를 주도하는 혁신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혁신병원이 되기 위한 전략으로 병원 안에 리빙랩(Living Lab)을 구축할 수 있다. 리빙랩은 병원의 모든 구성원과 환자·연구자·기업이 혁신에 직접 참여하는 협력 공간으로, 의료 현장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공동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둔다. 병원은 리빙랩을 통해 의료 현장의 문제를 수렴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이 이뤄진다면 사업화도 가능할 것이다. 혁신은 변화이며 현재의 역사적·공간적 맥락 속에 싹트는 기회의 씨앗이다. 병원은 이제껏 서비스 중심, 또는 기술 중심의 파편화된 혁신을 추구해 왔다. 이제는 병원 현장 중심의 혁신을 위해 서비스와 기술이 힘을 합칠 때다. 병원 구성원들의 혁신 정신과 혁신 추구의 리더십, 혁신을 향유하는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도 하루빨리 의료 대란의 매듭을 풀고 혁신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싹틀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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