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2·3 비상계엄’ 당일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 등을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을 검찰·경찰로 다시 보냈다. 공수처가 검경에 이첩을 요구한 사건을 두 달도 안 돼 재이첩하면서 결국 수사 지연만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수처는 향후 직접 기소가 가능한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에 대한 수사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4일 언론 브리핑에서 “어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 전 장관 사건을 경찰로 이첩했다”며 “검찰에도 이 전 장관 사건을 오늘 오후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공수처는 비상계엄 관련 중복 수사를 막겠다며 이첩 요청권을 행사해 경찰과 검찰로부터 각각 지난해 12월 16일과 26일에 윤석열 대통령과 이 전 장관 사건 등을 이첩받았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사건 재이첩 사유로 ‘내란죄 수사권’을 들었다. 공수처 관계자는 “법리 검토 결과 직권남용이 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직권남용 관련 범죄로 내란 혐의까지 나아갈 경우 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받을지 모른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는 미수 처벌 규정이 없다. 이 전 장관의 지시는 미수에 그쳐 혐의 입증이 어려운데 내란 혐의까지 수사하면 법원이 위법 수사로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내란죄 직접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는 직권남용 혐의의 ‘관련 범죄’로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해왔다.
공수처 관계자는 검경 각각 이첩과 관련해서는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등을 포함해 8가지 혐의로 사건을 넘겼고 경찰은 3가지 혐의를 적시해 검찰이 보는 혐의점이 더 많다는 것도 참고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의미는 반환”이라며 “양 기관이 적절한 시점에 (중복 수사 문제를) 협의하거나 조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수처가 법리 검토를 근거로 들었으나 애초에 수사권이 없는 사건에 대해 무리하게 이첩을 요구하면서 수사 지연과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의 권한에 비해 인력과 조직이 턱없이 작은데 애초에 무리를 했다”며 “수사권 문제는 처음부터 제기된 문제였는데 무시하다 스스로 그 벽을 넘지 못하며 아마추어임을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 요구 당시는) 당연히 법리 검토가 이뤄지기 전이었다. 조사가 이뤄지기 전이었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첩을 요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공수처는 경찰에서 넘겨받은 윤 대통령, 국무위원 4명, 군사령관 5명, 경찰 간부 4명, 국회의원 1명 등 15명에 대한 사건 중 직접 기소 권한이 있는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에 대한 사건에 집중할 방침이다. 특히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청장은 먼저 재판에 넘겨진 만큼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 사건에 수사력을 모아 직접 기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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