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도입한다고 발표한 프로젝트 리츠가 고환율로 시름하는 기업들에 또 다른 자금 조달 통로로 떠오르고 있다. 투입 비용만 몇 천억 원에 달하는 생산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연구개발(R&D)센터 등을 프로젝트 리츠를 통해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장기 임차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LG그룹 등 주요 기업 리츠들이 프로젝트 리츠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23일 리츠 업계에 따르면 LG그룹의 부동산 관리 회사 디앤오(D&O)는 이달 국토교통부에 R&D리츠와 산업단지리츠 등 자산 개발 단계부터 투자하는 프로젝트 리츠에 대한 운용 계획을 담은 리츠AMC(자산관리 회사) 설립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미 SK리츠를 운용하고 있는 SK그룹도 하이닉스 생산 공장 등을 짓는 프로젝트 리츠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금융 계열사를 통해 최근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고 리츠AMC 인가를 준비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도 도입을 기다리면서 프로젝트 리츠 사업 계획을 짜는 곳도 있고, (일반) 리츠로 추진하다가 추후 프로젝트 리츠로 전환하려고 준비하는 곳도 많다”며 “기본적으로 기업이 장기 임차하는 만큼 우량한 자산들이고, 리츠로 개발해서 운영까지 하게 되면 취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만큼 기업들에는 메리트가 크다”고 설명했다.
리츠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수익을 배당하는 주식회사다. 이에 따라 SK·한화·롯데그룹 등 많은 대기업이 회사가 보유한 사옥이나 백화점·마트 등의 자산을 리츠에 넘기며 현금을 확보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정부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건전성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프로젝트 리츠를 통해 부동산을 개발할 때 토지를 현물출자하면 양도차익 과세와 납부를 이연해주겠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기업들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등을 지으려면 토지를 확보한 뒤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를 설립해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완공된 후 리츠에 재매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같은 과정은 시간만 잡아먹으면서 리츠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소로 꼽혔다. 프로젝트 리츠를 활용하면 리츠가 부동산을 직접 개발해 임대·운영까지 할 수 있고 취득 비용이나 사업 지연 등에 따른 추가 비용이 감소해 투자 비용 또한 줄일 수 있다.
LG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도 이 같은 자산 개발과 운용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으로 리츠 사업에 뛰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디스플레이·이노텍·화학·에너지솔루션 등이 입주한 R&D 허브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부터 △가산 LG사이언스파크 △파주 LG디스플레이 R&D센터 등 다수의 연구개발센터를 보유 중이다. 리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차와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를 늘려야 할 것”이라며 “프로젝트 리츠를 통해 초기 투자 비용을 절감하고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LG D&O 관계자는 “내부적인 검토 수준”이라며 “1호 자산으로 LG헬로비전이 임차하고 있는 상암 드림타워 매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계획은 추후 결정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프로젝트 리츠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려면 조세특례제한법과 부동산투자회사법 개정이 필요한데 최근 정국 상황으로 국회 논의가 멈춰 서면서 언제 법안소위원회가 열릴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형 리츠 운용사 관계자는 “공급망 재편과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등 어느 때보다 기업들의 자금 부담과 운영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며 “비용 부담을 줄이고 재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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