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정할 마지막 기관은 사법부입니다. 본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 훌룡한 판사고, 반대라면 나쁜 판사·정치 판사라고 하면 어느 곳이 국민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법조 1번지’ 서초동에서 잔뼈가 굵은 A 변호사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정치적 이해 관계로 사법 시스템마저 망가뜨리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특히 사법부를 겨냥한 정치권의 발언·행태가 최근 몇 년 새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혐의 재판에 대한 생중계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감 놔라, 배 놔라’하거나, 재판부의 선고마저도 무차별적인 공격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이 대표의 1심 선고를 생중계 해야 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관련 법적 이익과 진행 경과 등을 고려해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한동안 이 대표 재판에 대한 생중계는 정치적 논란 거리로 여야 ‘입방아’에 올랐다. 국민의 힘은 최근 이 대표 측의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한 ‘재판지연방지 태스크포스(TF)’도 당 법률자문위원회 산하에 구성했다. 재판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중계할 지는 물론 1심에 이어 2심·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도 신속하게 완료하라는 등까지 여당이 목소리를 낸 셈이다.
야당인 민주당의 경우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를 두고 ‘릴레이’ 비판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한성진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ㅎ며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의 쟁점은 이 대표가 대선 후보 시절에 한 발언이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 여부. 재판부는 이 대표가 당선을 목적으로 이른바 ‘대장동 의혹’과 거리를 두기 위해 사업 실무자로 일해온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해외 출장 중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한 발언을 허위 사실 공표로 판단했다.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은 ‘당선 목적으로 연설·방송 등의 방법으로 출생지·재력·행위 등에 관한 허위 사실을 공표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역시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시비를 차단하고자 국정감사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고 봤다. 이 대표가 2022년 9월 기소된 지 약 2년 2개월 만에 나온 판결에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역사는 어제 법치가 질식하고 사법 정의가 무너진 날로 기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한민수 대변인은 “정적 죽이기에 올인한 대통령과 이에 동조한 정치 판결로는 민시을 거스를 수 없다”고 각을 세웠다. 조석래 수석대변인도 “검찰이 시작한 윤석열 정권의 대선 후보 죽이기, 정적 말살 시도에 (법원이) 판결로 화답한 것”이라며 “검사는 이 대표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고 조작·왜곡해서 기소했는데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판결을 했으니 제대로 된 판결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의 경우 법원의 선고 직후 본인 페이스북에 “터무니 없는 재판 결과에 유감을 표한다.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적었다. 법원의 1심 판단조차도 정치 유불리 앞세워 판단하고, 각종 비판 발언으로 직·간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이는 30년 가까이 서초동에서 몸 담아온 A 변호사가 “하질(입법부)의 집단이 고질(사법부)의 집단을 발 아래에 두려고 한다”고 걱정의 목소리는 강하게 제기하는 이유다. 재판 생중계 등 일정은 물론 결과까지 여야 정치권이 도 넘는 ‘훈수(?)’를 두는 등 사법권 독립을 훼손해 삼권분립의 기틀마저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5일에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도 조만간 2심에 돌입하는 데다, 이 대표가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등까지 재판도 곧 시작하거나 현재 진행형이라 정치권이 사법부에 대 도 넘는 공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A 변호사는 “3심 제도를 만들어 3번까지 재판을 하면 승복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며 “사법부는 정치적 이해 관계에 상관 없이 국민을 위해 일하기 위해선 철저히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부가 무너진다면) 갈등을 해소할 기제가 없어 진다”며 “결국 광화문이나 서초동에서 데모하고, 사회는 51대 49로 철저히 이분화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정치 사법화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삼권분립마저 흔들면서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 정치 양극화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A 변호사가 정치권에 대한 쓴소리와 함께 사법부의 각성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정치적 영향에 관계 없이 소신대로 판단하고 있는지 또 정치인·권력자나 일반 국민에 대해 재판이 동일하게 운영되고, 최종 선고까지 내려졌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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