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을 피해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간 베트남은 첨단 반도체 기지국으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중국의 대체국이 아닌 핵심 공급망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 유치 및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한국·미국·일본·중국·대만·인도 등 주요국의 반도체 기업 40여 곳이 투자하고 있다. 약 20년 전 일본의 자동차용 반도체 회사인 르네사스가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뒤 미국의 인텔이 2010년부터 지금까지 약 15억 달러(약 2조 원)를 투자하며 베트남 반도체 산업 성장의 마중물을 제공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된 계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불을 댕긴 2018년 무역전쟁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안정적인 정치 환경, 그리고 지리적 이점을 내세운 베트남은 새로운 반도체 생산기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0년대 들어 삼성(8억 5000만 달러) 등을 비롯해 유수 반도체 기업들이 베트남 내 생산 공장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통신 산업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 분야로 떠올랐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베트남 전자통신 산업의 2022년 수출액은 1143억 달러(약 157조 원)로 2018년의 796억 달러(약 109조 원)와 비교해 4년간 무려 44%나 급증했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칩 수입국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2월 기준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입한 반도체 칩은 5억 6300만 달러어치로 전년 동기 대비 74.8% 급성장했다. 말레이시아(-26.3%), 대만(4.1%) 등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베트남의 전기전자 산업이 과거 휴대폰 등 완제품 조립 위주에서 반제품 또는 반도체 패키징·설계 등으로 고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설계와 패키징 및 테스트 분야는 초기에 큰 투자가 필요하지 않아 현지 생산 확대가 용이하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중 무역 갈등에 맞춰 발 빠르게 베트남 투자를 늘릴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베트남 반도체 산업은 패키징 및 테스트로 한정돼 있다. 반도체 칩 제조도 거의 100%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선택한 베트남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고도화를 위해 해외 기업 유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의 난제로 꼽히는 인력 양성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약 6000명의 반도체 부문 엔지니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미래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베트남 정부는 2030년까지 반도체 엔지니어 3만~5만 명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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