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까지만해도 중국음식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청경채는 마라탕과 마라샹궈 열풍에 힘 입어 국내 재배가 활성화되면서 이제는 ‘귀화채소’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청경채의 약 70%는 경기 용인시 모현읍에서 생산되고 있다. 모현읍 청경채는 원산지인 중국의 그것을 능가하는 맛과 안전성으로 가락동농수산물 시장에서 전량 경매되고 있다. ‘청경채의 성지’란 주민들의 표현에 부족함이 없다.
모현읍은 90년대까지만해도 전형적인 가난한 농촌이었다. 참외나 상추를 심던 주민들의 평균소득은 용인시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 당시 종묘사에서 신품종 청경채 재배를 몇몇 농가에 권유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27년이 지난 현재 모현시설채소생산자연합회 문용우 회장에 따르면 연합회 소속 80여개 농가 연 평균 소득은 3~4억 원에 달한다. 대기업 임원급 벌이를 하는 셈이다.
올해 62세인 문 회장은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안산에서 다니던 대기업 ‘풍산’을 퇴사하고 청경채 재배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미 모현읍에서 ‘청경채 선도자’로 널리 알려진 친형의 권유 때문이었다.
문 회장은 “형님이 ‘이건 된다. 뜬다. 내가 책임진다. 들어오라’고 성화였다"며 “방산업체인 풍산은 대우도 좋았지만, 형님이 성공을 확신해 사흘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고민하다 결정했다”고 말했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 뛰어든 이들은 문 회장 주변에 수두룩하다. 교사, 사업가 등이 수십 년 전 이 미지의 채소에 가족의 미래를 걸었고, 선택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문 회장은 660㎡ 규모의 비닐하우스 35개 동에서 청경채를 재배한다. 작황이 좋을 경우 4kg짜리 청경채 박스를 하루 200개 내다 판다. 시세가 좋을 때는 하루 9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단다.
문 회장이 손꼽는 모현 청경채의 장점은 경안천의 맑은 물과 재배에 알맞은 토양이 빚어낸 아삭한 식감이다.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출하 박스에 생산자 이름·주소·전화번호를 게재하고 주기적으로 토양잔류농약검사를 진행한다. 잔류 농약이 검출되면 적발 횟수에 따라 모현시설채소생산자연합회에서 제명 처리할 정도로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다.
오랜 기간 다져온 노하우로 토양·물 관리, 양액 급여 방법을 발전시켜 1년 동안 최대 7번의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도 모현 청경채가 시장을 휩쓰는 비결이다.
청경채는 노화 방지, 눈 건강, 고혈압 예방, 피 건강, 면역력 강화, 위·장 건강, 피부 미용, 다이어트 등 다방면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모현읍에서는 최근 청경채 김치를 개발해 상품화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모현읍은 가로 1.5m, 세로 5.3m에 달하는 청경채 조형물을 마을 입구에 세웠다. 3500만원이란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됐다. 여느 지자체 같으면 예산낭비 논란이 일 법 하지만 모현읍에서는 그런 소리가 일체 없다. 문 회장은 “청경채는 모현의 축복이자 보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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